사람은 순간순간 변화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그대로인 것이 아닙니다.
TV를 켜 놓고 멍때리고 있어도 눈에는 TV 화면이 보입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TV화면의 반사광이 눈과 뇌에 입력됩니다. 이미 뇌는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나는 변화한 것입니다. 문득 출연자에 눈이 갑니다. 누구라고 억지로 기억을 짜내지 않아도 출연자가 누구인지 압니다. 그 순간 나의 뇌는 변화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십니다. 따뜻한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온 순간 의식하지 못하지만 뇌는 열심히 내 몸에서 보내는 정보를 처리합니다. 나의 뇌는 변화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인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내가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자신의 변화는 곧 자기 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의식 여부를 떠나 몸에 정보가 전달되고 그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신경세포가 하는 일입니다. 신경세포가 일을 하므로 당연히 신경계에는 어떤 형태건 변화가 생깁니다. 그러한 변화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 합니다.
예전에는 사람은 평생 사용할 뇌세포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뇌는 스스로 재생할 수 없고 뇌세포가 손상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신경계의 역할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 삼아 주어진 상황에 맞게 최선의 결정을 내려 행동하고 주위 환경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신경계는 변화하도록 진화했으므로 신경가소성은 신경계의 근본적인 속성입니다.
가소성(plasticity)이란 외부의 자극에 쉽게 변형이 일어나지만 한 번에 완전히 바뀌지는 않은 구조를 갖춘 성질을 말합니다.
신경세포의 가소성은 시냅스 강화와 새로운 시냅스 연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냅스란 두 신경세포가 서로 접속하는 장소, 또는 모습 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을 보면 하느님과 아담의 손이 닿으려 합니다. 신경세포들 간의 바로 그러한 모습이 시냅스입니다.
시냅스야말로 학습 곧 과거의 경험이 축적되는 장소로서 사람의 변화가 나타나는 곳 신경가소성이 발생하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신경세포는 전선처럼 전기가 흐릅니다. 우리 몸에 어떤 자극이 들어오면 감각신경은 그 자극을 전류로 바꿔 중추신경, 특히 뇌로 보냅니다. 신경이라는 도로로 달려가는 전류는 마치 다리와도 같은 신경세포들끼리의 시냅스를 통해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됩니다. 신경세포의 연결망에 따라 해당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부위가 활발하게 작동합니다.
일단 들어온 전류는 나가는 길을 찾는데, 그 과정에서 흔적을 남깁니다. 기존의 경로를 더욱 깊이 새기거나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지요.
신경세포는 스스로 재생하지 않으므로-신경줄기세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신경세포가 재생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보통 신경세포는 피부 세포나 혈구 등 대부분 세포와 달리 분열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극이 발생했을 때 주위 신경세포와의 연결을 강화, 증폭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특정 시냅스에서 뉴런 간의 신호전달이 더 많이 일어나는 현상을 시냅스 강화라고 부릅니다. 특히 신경 신호를 장시간 지속시켜 시냅스의 전달 강도를 정해진 시간보다 오래 그리고 높게 유지하는 생리 메커니즘을 장기강화(Long Term Potentiation)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은 바로 장기강화 때문입니다. 자동적으로 구구단을 외웁니다. 바로 장기강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회상이 되는 것입니다. 학습과 기억은 세포 차원에서 시냅스 변형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신경가소성은 두 가지 차원에서 나타납니다. 기능적 가소성과 구조적 가소성입니다.
기능적 차원에서의 변화는 신경세포에서 자극의 빈도나 시냅스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의 방출량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자극 발생의 역치가 바뀌기도 합니다. 또 신경세포 집단의 동시 점화 같은 변화도 있습니다. 모두 세포 생리적 측면에서의 변화입니다.
새로운 신경섬유 가지가 성장하여 마치 나무처럼 자랍니다. 뇌의 신경망은 밀림 속 식물들이 엉켜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가지가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모두 한 신경세포에서 가지가 뻗어 나와 다른 신경세포와 시냅스를 형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냅스는 없던 것이 만들어졌듯이 자극의 유무에 따라 사라지기도 합니다. 구조적 가소성은 새로운 신경섬유 가지와 시냅스가 형성될 때, 또는 새로운 세포가 생기고 성장할 때 수반되는 특정 뇌 영역에서의 변화를 말합니다.
신경가소성은 신경섬유를 따라 전달하는 전류 발생과 신경전달 물질의 분비, 흡수, 민감도와 같은 신경세포의 활동이라는 분자적 수준에서부터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망이라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뇌신경 수준, 그리고 뇌 차원에서 각 연결망들의 연결 시스템과 인간의 감각, 인지, 행동이라는 신경계 전체 수준에서 나타납니다.
신경가소성을 어떤 수준에서 살피느냐에 따라 시냅스 변형의 시간도 달라집니다.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는 1000분의 1초 단위로 일어나고, 시냅스와 가지돌기는 몇 시간 만에 생성되었다가 파괴됩니다.
신경가소성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것은 학습, 기억, 변화, 적응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뇌는 아동기 말에서 성년기 초까지 가소성이 장기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 상태로 발달하다 차츰 가소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성인의 뇌 역시 변화하는 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평생 변화를 합니다. 떨어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뇌의 가소성 덕분입니다.
운동선수들은 많이 쓰는 근육이 발달합니다. 정신적인 운동을 많이 한다면 뇌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정신적 운동과 관련된 뇌의 시냅스 연결이 더욱 활발해집니다.
야생동물과 가축의 뇌를 비교하면 가축의 뇌가 더 작다고 합니다. 야생동물은 생존경쟁을 모든 순간 해야 하지만 가축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생존을 위한 자극이 없으니 뇌가 퇴행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뇌는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학습을 한다면 우리 뇌는 자극을 받아 더 발달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성숙하고 현명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쉬지 않고 공부하여 뇌를 자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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