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혈에 대한 가벼운 접근입니다.
비유를 통한 편한 이야기라 생각해 주세요.
‘막힌 혈이 뚫리면서 …….’ 이런 비슷한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혈이란 한자로 穴, 구멍을 말합니다. 막힌 구멍을 뚫었다는 말입니다.
하수구가 막혔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하나요? 구멍을 뚫기 위해서 가늘고 날카로운 물건으로 막힌 곳을 쿡쿡 찌릅니다. 그러다 구멍이 좀 뚫리면 그 사이로 휘젓고 빙빙 돌리면서 구멍을 막고 있던 쓰레기 더미를 내립니다.
물론 트래펑을 써서 뚫을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인체에 비유하면 물리적 방법은 침이 되겠고 화학적 방법은 약이 되겠군요.
동양사상은 세상에는 공간적, 시간적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흐름의 출입이 현저한 곳이 있다는 관점으로 자연현상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의 기운이 출입하는 곳을 발견하여 그 기운을 이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으로 땅을 해석한 것이 풍수지리입니다.
땅에는 기운의 흐름이 있고 그 기운이 출입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명당이라 합니다. 명당은 땅의 기운이 모여 있어 사람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치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로 보면 백두대간의 큰 기운이 응집된 곳이 경복궁 터입니다.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하겠습니다.
기운의 출입구로서 명당이란 넓지 않고 관문과 같이 좁고 작습니다.
사람의 인체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경락을 따라서 흐르던 기혈이 강하게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을 경혈(經穴)이라고 합니다. 경락에 있는 구멍이라는 뜻입니다. 혈이 막히고 뚫린다는 말이 있고, 기가 막힌다는 말이 있듯이 경혈은 우리 몸의 기혈이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출입구와 같은 곳입니다. 경락의 기운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구멍을 통과하고 이곳을 통해서 각 경락의 기혈은 외부세계와 통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막아버리거나 관문을 파괴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무협영화나 소설을 보면 주먹이 아니라 손가락 하나만으로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을 보면 일양지라는 무공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펼치는 무공입니다. 손가락으로 찌를 뿐인데 어마어마한 무공이 펼쳐집니다. 웅혼하고 장대한 스케일의 거짓말이 분명한데도 뭔가 있어 보입니다.
쿵푸팬더에서도 주인공 팬더 포가 침을 잘못 맞아 입이 홱 돌아가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구멍을 뚫으려면 가늘고 날카로운 물건을 씁니다. 주먹보다는 손가락이 좀 더 가늘고 좁은 지점을 정확하게 누르기에 적합합니다. 손가락 끝에 최대한 에너지를 응축하여 그 에너지가 출입하는 핵심 포인트를 자극하는 것이지요. 무술에서는 점혈법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경혈의 관문을 열고 닫을 수 있을 정도로 손가락 끝에 힘을 모아 집중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도구를 사용합니다. 바로 침입니다.
침으로 특정 기혈이 흐르는 경락에서 그 기혈의 흐름을 조절하는 관문을 여닫을 수 있습니다. 병이란 우리 몸에서 기혈의 균형이 어그러진 상태를 의미하므로 특정한 혈을 강하게 자극하여 막힌 것은 뚫어주고 너무 과하게 흐르는 것은 닫음으로써 건강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전적인 침 치료의 원리입니다.
우리 몸에는 12개의 경락과 8개의 기경이 있습니다. 각 경락 노선 위에 361개의 기본혈이 있습니다. 365일과 비슷합니다. 이외에도 기혈(奇穴)이라고 하여 무수한 혈이 존재합니다.
이 혈에 침을 놓음으로써 경락을 흐르는 기혈을 조절합니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침을 잘 놓으면 쿵푸팬더에 나오는 것과 반대로 돌아간 입이 정상으로 반듯하게 됩니다.
고전적인 침법에서는 경혈에 침을 놓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혈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의사가 침을 놓으면서 피부를 문지르는데 탐혈(探穴)이라고 하여 혈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혈자리는 경락을 따라 위치가 정해집니다만 출입문의 성격이 있다 보니 경혈 부위는 근육의 결을 따라 미세한 변화가 있습니다. 어떤 곳은 깊이 위치하고 어떤 곳은 피부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하기보다는 손으로 근육의 결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확한 경혈에 침을 놓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큽니다. 잘못된 곳에 침을 놓는다는 것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문 옆의 벽을 쿵쿵 두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네요. 1㎜도 안 되는 차이를 두고서도 침의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합니다.
탐혈을 하여 정확한 출입문을 찾은 후 거기에 침을 놓아 기혈을 조절합니다. 보사법이라 하여 문을 더 크게 열거나 닫아 경락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면 기운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나타난 병이 좋아집니다.
해부학적으로 명확한 근육이나 생화학, 생리학적 설명이 가능한 것과 달리 장부와 육기에 기초한 고전적인 경락과 경혈에 대한 이론은 모호한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호한 것과 달리 치료 효과는 분명합니다.
피부 어딘가에 쏙 찌르는 가느다란 침이 체한 것을 내린다거나 안구충혈을 없앤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침의 부작용이라 해 봐야 멍드는 것 정도이니 꼭 근골격계 통증이 아니더라도 침을 맞아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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