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 지구 생물을 관찰한다면 인간을 별도의 종으로 구별할 것입니다. 아마 털 없는 피부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가 된 근거가 피부에 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뇌에 있습니다. 발달한 뇌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 고유한 종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큽니다. 진화상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뇌는 인간의 1/3, 뉴런의 수도 1/3에 불과합니다. 작은 두개골 안에 거대한 뇌를 넣기 위해 뇌는 이리 접고 저리 접혔습니다. 특히 대뇌피질은 주름이 많아 쫙 펼쳤을 때 표면적이 침팬지의 4배에 달합니다.
태아는 이렇게 큰 뇌로 산도를 헤치고 나오기 위해 머리뼈가 열린 미성숙 상태로 태어납니다. 생존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뇌는 왜 이리도 커졌을까요?
식물에게는 뇌는 물론이고 신경계가 없습니다. 신경계는 종속영양을 하는 동물의 특성입니다. 신경계가 발달할수록 생존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진화를 하면서 신경계는 점점 더 정교하게 발달합니다.
진화의 과정을 공유하는 척추동물은 중추신경계를 공유합니다. 더 나아가 모든 포유류는 감정처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변연계와 생명 유지를 담당하는 뇌간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은 물론이고 포유류 뇌의 기본 틀에서 많이 벗어납니다.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이 과도하게 발달하였습니다. 이 부위는 진화 과정에서 몸의 크기와 균형이 안 잡힐 정도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우리 인류만 한 크기의 영장류 동물과 비교해 볼 때 두 배에 달합니다.
뇌가 크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뇌가 더 클수록 뉴런들이 늘어나고 뉴런들 간의 연결인 시냅스가 많아집니다. 신경의 연결망이 뇌 기능의 핵심이므로 더 많은 신경과 더 많은 시냅스는 더 발달한 뇌의 특징입니다.
본래 신경계는 경험을 바탕 삼아 주어진 상황에 맞게 최선의 결정을 내려 행동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신경 결합의 네트워크가 광범위할수록 주위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전전두피질이 손상된 대표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피니어스 케이지라는 사람입니다.
철도 공사장 작업 간부였던 그는 폭발로 인해 철근이 이미 부위 뇌 앞쪽을 관통하는 큰 부상을 당합니다. 수술 후 회복한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던 케이지는 참을성이 없어지고, 수시로 음란한 농담이나 하는 몰염치한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일도 제대로 못해 자기의 상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서커스단을 전전하다 생을 마감합니다.
피니어스 케이지의 불행한 삶으로 인해 전전두엽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발달한 인간의 전두엽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입니다.
피니어스 케이지 이후 공격성이 강한 정신병 환자의 전두엽을 절제하는 수술이 많이 시행되었습니다. 지금 관점에서 바라보면 야만적입니다만 케네디 가문의 막내가 수술을 받을 정도로 많이 시행되었습니다. 고치기 어려운 공격 성향이 개선되기는 했습니다만 성격의 표현과 자발적인 추진력에 많은 장애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과정을 그립니다.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자동적으로 생기기도 합니다. 그것을 작업기억이라 합니다.
저녁을 할 때 재료 준비에서부터 물의 양, 불 조절 등 여러 일을 처리합니다. 자유자재로 가능한 것이 작업기억 덕분입니다.
사람은 규칙이 바뀌었을 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러나 전전두엽이 손상된 사람들은 계속해서 낡은 규칙만을 고집합니다.
기억해 낸 사건을 적절한 맥락에 배치하는 작업기억이야말로 전전두엽의 가장 크 역할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손상이 발생하면 너무도 능숙하던 요리를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브로카 영역이라 들어보셨을 겁니다. 브로카라는 의사의 환자 중에 ‘탕’이라는 별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두엽에 뇌경색을 앓았는데 그는 ‘탕’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을 못했습니다. 전두엽 손상 후 언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렇듯 전두엽, 특히 전전두엽은 주변 환경의 인식과 환경 변화에 따른 갱신, 언어로 만드는 추상화, 통찰력, 자의식, 우리 인간의 고등 정신 작용의 사령탑이라 하겠습니다.
전전두엽을 포함한 전두엽이 커짐으로써 인간은 단순한 반사 행동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대상을 타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진화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사물, 사람, 사건 사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별 사물에 그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생존 경쟁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 주고 시행착오에 수반되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고양이가 바짝 엎드려 엉덩이를 씰룩일 때, 비록 주변에 특별한 것이 없더라도 무언가를 공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어느 고양이의 이런 행동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은 고양이라는 종 전체에 행동의 추상화를 만듭니다. 그로 인해 사자의 씰룩이는 엉덩이를 보았을 때, 멀리서 도망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뇌는 태어난 상태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환경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고 이로 인해 관념 연합이 더 많이 생깁니다.
만약 시냅스의 형성을 멈춘다면, 시냅스의 형성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전전두엽이 손상된 사람들은 무신경한 태도를 보입니다. 인생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정과 교감의 결여로 보입니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작업기억력이 나빠져 어떤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거부합니다. 단계적으로 처리할 전략을 요모조모 생각할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특히 하고 싶지 않은 절차일 때는 더욱 심해지는데 시간 부족의 핑계를 댑니다.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치매의 첫 증상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신경계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합니다. 멈추는 순간 뇌는 자기의 기능을 잃기 시작합니다. 신경계의 변화는 우리 삶의 끊임없는 경험으로 유지됩니다.
재미를 찾고, 재미있는 것을 하고, 나누십시오. 이것이 거대해진 우리 뇌의 진화라는 자연에 맞는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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