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엄마, 아빠가 늦게 들어와 불안했던 기억 없으신가요?
발표를 해야 하는데 긴장해서 가슴이 뛰고, 손에서 땀이 나 흥건하고, 팔다리가 덜덜 떨렸던 적은 없으세요?
아니면 스트레스가 많아 소화가 잘 안 되고 밥 먹으면 금방 배가 신호를 보내 화장실을 찾아야 했던 기억은요?
마음이 평소와 같이 편안하지 못하고 흥분하여 불안한 것은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천둥, 뱀이나 쥐, 혼자 있는 것, 어둠 등에 대한 공포는 자연 상태에서 맞닥뜨리는 진짜 위험에 대한 뇌의 적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위험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퇴화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입니다.
불안이 진화론의 관점에서 적응의 산물이라면 인간에게는 불안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을 것입니다. 불안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어 그 유전자가 많은 사람은 불안한 성격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혈액형처럼 불안을 더 느끼는 성격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이 자식에게 대물림된다는 말은 언뜻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향이 내 탓이 아니라 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실험과 후향적 연구를 통해 불안과 관련이 높은 몇몇 유전자가 밝혀졌습니다.
유전학이 아직 덜 발달되었을 때, 유전 여부를 확인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쌍둥이 연구였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의 공황장애와 관련된 연구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가 동시에 공황장애를 가지는 경우가 훨씬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략 30%의 차이가 났습니다.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지라도 유전적으로 결정되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이 만약 유전자에 의해 불안이 나타난다면 일란성 쌍둥이는 한쪽이 공황장애가 있을 경우 다른 쪽도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유전자의 역할은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데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어떤 단백질이 생기느냐에 따라 기능과 구조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고유의 유전자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이유입니다.
우디 앨런 유전자라는 별칭을 가진 COMT 유전자가 있습니다. 이 유전자는 전두엽 피질의 도파민 분해 효소 생산에 관여합니다. 도파민이 많으면 집중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COMT 유전자는 도파민을 분해하는 효소를 생산하므로 이 유전자가 발현하면 무언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유전자에 따라 만들어지는 아미노산이 달라지는데 발린/발린, 발린/메티오닌, 메티오닌/메티오닌의 세 가지 변이가 있습니다. 발린/발린의 유전자는 도파민을 아주 효과적으로 분해하는 효소의 농도를 높입니다. 그래서 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부정적 정서와 두려움을 일으키는 원인에 강박적으로 몰두하는 경향을 갖습니다.
SLC6A4라는 유전자는 SERT라고 하여 세로토닌 수송체의 발현에 영향을 미칩니다. 세로토닌이 시냅스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 결정합니다. 유전자의 모양에 따라 단/단, 단/장, 장/장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장/장 모양을 가진 유전자가 있으면 세로토닌이 효율적으로 처리됩니다. 이 말은 시냅스에 세로토닌의 양이 적다는 의미이고 행복 물질이라고 일컬어지는 세로토닌이 적으니 불안, 우울의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장/장 유전형을 가진 사람은 공포반응의 핵심 영역인 편도체의 활동이 증가합니다.
CRHR1 유전자는 부신피질자극호르몬분비호르몬(CRH)의 수용체와 관계있습니다. 말이 길어지네요. 부신피질에서 아드레날린 다른 말로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것은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킵니다. 부신피질에게 이 호르몬을 만들라는 신호를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이라 합니다. 뇌에서 나옵니다. 뇌하수체전엽에서 방출되어 혈관을 타고 부신에 전달됩니다.
그리고 뇌하수체에게 이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을 만들라는 명령은 시상하부에 서 CRH에 의해 전달됩니다. CRH에 민감한 정도에 따라 궁극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의 정도가 결정됩니다.
CRHR1은 민감도를 조절합니다. 변형된 CRHR1 유전자를 가진 아이는 어려서 불안 경향이 심하고 성인에 이르러서 병적 우울증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불안을 쉽게 느끼는 성향이나 심하면 불안장애나 우울증의 기저에는 유전이 작용합니다.
10~20%의 아기가 생후 몇 주 되지 않았을 때부터 다른 아기들보다 소심한 성격을 보인다. 더 많이 보채고, 잠을 덜 자고, 심장 박동이 더 빠르고, 근긴장도도 더 높고, 코티솔이나 소변 안의 노르에피네프린 농도도 더 높습니다. 놀람 반응도 더 빨리 나타납니다.
뇌의 공포 회로인 편도(amygdala)와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의 신경 활동이 평균보다 활발하며 이런 생리적 수치들은 평생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됩니다.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니 그럼 나는 할 일이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선 유전자는 있지만 그 영향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새끼 원숭이들에게 뱀을 보여주었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뱀을 무서워하는 동료가 반응을 보이자 그때부터 원숭이들은 뱀을 무서워했습니다.
뱀 대신 장난감으로 실험을 했을 때는 이 장난감에 공포를 느끼게 조건화된 동료가 반응을 보여도 집단적으로 공포감이 형성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불안, 공포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있으나 그것의 발현은 현실 속 맥락이 좌우합니다. 불안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어릴 때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에 비해 불안을 쉽게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뇌 연결망의 구조가 형성되는 유아 때 잘 보살핌을 받는다면 불안에 대처하는 능력은 현저하게 증가합니다.
원숭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여 뱀이란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뱀에 패닉을 보이는 원숭이가 옆에 있다 하더라도 어린 원숭이처럼 뱀 공포증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쟤 뭐야?”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유아 때 불안을 가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합니다. 어미 옆에 있을수록 훗날 자기 몸을 지킬 만큼 자랄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많이 안아주시면 그만큼 정서적으로 안정을 갖게 됩니다.
불안을 갖는 것이 불리하다면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엄연히 남아있습니다. 불안이라는 것은 뇌가 어떤 사물, 사건에 대해 강박적으로 몰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고도의 주의 집중을 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만약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이라면 기억과 집중을 요구하는 인지적 과제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환경을 더 잘 파악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 불안을 쉽게 느끼는 경향이 있더라도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사람마다 혈액형이 다른 것처럼 성격이 다를 뿐입니다. 이 성격이 상황에 따라서 좋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나쁘게 영향을 미치기도 할 뿐입니다.
만약 발표 전에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쿵쿵 뛰고 배가 싸르르 아프다면 ‘유전자가 열심히 발현되어 호르몬을 분비하는구나’하고 한걸음 떨어져서 내 몸을 보세요. 이렇게 불안을 물질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안정을 찾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답니다.
생각만으로 조절이 안 된다면? 걱정할 것 있나요? 한의사나 의사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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