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과거에서 미래로 한쪽 방향으로 흐르지만 반복 순환하는 주기성도 있습니다. 시간, 특히 태양의 주기성에 맞춰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리듬을 가집니다. 사람도 하루라고 하는 주기에 적응하였습니다. 우리 몸은 하루를 단위로 하여 매시간마다 몸이 달라집니다. 낮과 밤의 몸 상태는 극단적으로 바뀝니다.
밤에 일어나는 대표적인 활동은 잠, 수면입니다. 잠은 아무것도 안 하는 마치 죽음과도 유사하다고 여겨집니다만 수면 역시 우리의 의식이 작용하지 않을 뿐 무척이나 적극적인 뇌의 행위입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위험한 행동입니다.
자는 동안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휴식 상태입니다. 시각, 청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기관의 정보가 차단되고 동시에 근육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의식마저도 없어집니다. 체온이나 호흡, 심장박동도 모두 저하됩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잡아먹히기 딱 좋은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을 잠을 잡니다. 잠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잠은 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 SCN)의 작용입니다. 1,000억 개의 뇌세포와 비교했을 때 고작 2만 개에 불과합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를 비롯하여 올림푸스산에 사는 눈에 띄는 신이 있습니다만 이들 이외에도 온갖 신들이 있습니다. 소소한 신들도 자기가 관장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뇌의 활동을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SCN에 입력되는 정보는 빛입니다. 태양의 일주기에 낮과 밤의 빛의 양이 차이가 나고 빛이 줄어들면 SCN은 자기의 스위치를 켭니다. 이 스위치는 정확하여 우리 몸에 내재한 시계입니다. 체내 시계는 빛이 없어도 작동하지만 빛을 통해 환경에 맞춥니다. 이 시계에 맞추어 우리 몸의 모든 활동은 하루를 단위로 시간마다 변화하여 나타납니다.
잠은 서서히 드는 것이 아니라 불을 켜고 끄듯이 갑작스러운 변화입니다. 잠의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외부 세계에 대한 의식에서 완벽한 감각맹으로 빠르게 신경이 변화합니다.
잠으로의 변화는 두 가지 전달물질이 작용합니다.
하나는 멜라토닌입니다.
SCN이 명령을 내리면 송과선(pineal gland)에서 멜라토닌의 분비가 늘어나고 혈액 내 멜라토닌의 양이 늘어납니다. 그러면 뇌와 몸은 잠잘 때가 되었다고 준비를 합니다. 송과선은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을 주장했던 데카르트가 이성이 존재하는 뇌의 부위라 말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혈액 내 멜라토닌의 증가는 성장을 비롯한 우리 몸의 많은 호르몬 변화의 원인이 됩니다.
잠을 일으키는 또 하나는 아데노신의 양입니다.
아데노신은 SCN과 달리 수면 압력을 일으킵니다. 깨어 있는 동안 활동하는 뇌에는 아데노신이 계속 축적됩니다. 그리고 축적된 아데노신의 양만큼 잠에 대한 압력이 커집니다. 아데노신의 양은 얼마나 오랫동안 깨어 있었나를 알려주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합니다.
SCN에서 조정되는 체내 시계와 아데노신에 의해 달라지는 수면 압력 두 가지의 상호작용으로 잠과 각성이 교대로 나타납니다. 밤샘을 해 보면 새벽에는 두 개의 힘이 모두 잠을 자는 방향으로 작동하여 잠이 쏟아집니다만 아침이 오면 의외로 잠이 달아납니다. 수면 압력은 계속 증가하지만 체내 시계가 다시 각성 모드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뇌세포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방법 중에 뇌파가 있습니다.
깨어있는 동안 뇌파는 제멋대로입니다. 특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면 특징이 있는 뇌파가 나타납니다.
깨어 있을 때는 천억 개의 뇌세포가 각각 조잘대다가 잠이 들면 지휘자에 맞춰 합창을 하는 모양입니다. 뇌의 동조가 발생합니다. 잠을 잘 때, 뇌는 복잡하고도 질서 정연한 활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신호를 차단하고 신진대사율과 체온도 낮춘 후 할 일이 많습니다. 손님이 가고 난 후 집안을 치우고 정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낮에 학습을 하거나 경험한 기억을 굳히며 시냅스 연결을 합니다. 또 불필요한 가지치기를 하여 사용이 뜸한 신경 경로를 없애 신경 연결망을 가다듬고, 우리 몸의 대사산물을 처리합니다.
세포의 대사활동 과정에서 기능이 저하되었거나 손상된 세포소기관, 세포질의 부산물, 변형된 단백질이 생깁니다. 이것을 세포 스스로 없애고 재활용하는데 이를 자가포식(autophagy)을 합니다.
특히 단백질은 하나만 결합이 잘못되어도 작동을 못하거나, 오작동을 하기도 합니다. 오토파지는 엉켜버린 이 단백질 조각과 낡고 손상된 세포조직의 세포질을 청소하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말끔하게 처리해야 세포가 더 건강해집니다. 특히 뉴런은 대부분 사람의 수명만큼 살기 때문에 신경 청소가 잘 이루어지면 뇌의 기능이 평생 원활하게 됩니다. 수시로 태어나고 죽는 세포와 달리 뉴런이 덕을 봅니다.
알츠하이머는 세포에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쓰레기가 쌓인 대표적 질환입니다. 뇌가 집안일을 소홀해서 치매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의심할 만합니다.
뇌는 자는 동안 하루 종일 습득한 정보를 샅샅이 검토해 처리합니다. 낮에는 정보를 습득하고 밤에는 그 정보를 처리하도록 진화한 것이지요.
전전두엽 피질 부위는 활동을 중단합니다. 보통 깨어 있을 때 활동하며 신체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고 감각 인식을 높이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은 아예 차단합니다.
그러나 해마와 해마와 연결된 공간 시각 처리에 중요한 피질 부위는 활성화하여 연결되는 과정에서 뉴런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잠을 자고 난 후 기억을 더 잘하게 됩니다.
잠을 자면 기억이 정리가 되고, 잊어야 할 기억을 없애기도 하며, 기술을 체화하고,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할 것이 많은 학생이나 일이 많은 현대인들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잠을 줄입니다. 그러나 잠을 줄이는 것은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은 자기 전 오늘 한 공부를 훑어만 보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생각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잠자는 동안 뇌가 알아서 정리하고 답을 찾아냅니다.
한의학의 건강은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낮에는 움직이고 밤에는 쉬는 몸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따르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자야 할 때 충분히 주무세요. 잠이 최고의 명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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