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상담을 할 때 이명이 있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다른 질환 때문에 한의원에 오셨지만 이야기를 나눠 보면 이명이 자주 드러납니다. 병이라고 딱 집어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명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명은 참 곤란한 질환입니다.
이명은 외부 세계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머리 안에서’ 또는 ‘귀 안에서’ 들리는 잡음입니다. 뭔가 명확하게 병이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주관적인 병입니다.
다른 사람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고 혼자서만 끙끙 앓게 됩니다.
병원에서도 객관적 측정이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환청도 아니고 정신은 멀쩡합니다. 그런데 자기 귀에는 소리가 들립니다. 주로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만 개미가 사각사각 긁는 듯한 소리, 바람 소리나 파도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계속 귀에서 뭔가 소리가 들리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귀에서 뭔가 들리는 걸까요?
환상지 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술로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들이 본래 있던 팔이나 다리에서 가려움이나 심한 통증을 느끼는 증상입니다. 참으로 이해 안 되는 모습입니다. 오른쪽 검지가 없는데 검지가 아프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통증을 분명히 느끼지만 실제로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뇌가 통증을 만든 것입니다.
뇌에는 신체 지도가 있습니다. 신체 각 부위의 움직임이나 감각을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해당 부위로부터 뇌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정보가 들어오고 뇌는 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갑자기 손 하나를 절단하는 경우가 생겨도 대뇌 피질의 신체 지도에서 이 손에 상응하는 영역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뇌에는 손이 계속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없는 손을 느끼게 됩니다. 정상적으로 받아왔던 정보들을 박탈당한 뇌는 비정상적으로 기능하여 환상지의 통증이 생깁니다.
이명은 환상지와 유사합니다. 뇌가 정보를 박탈당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명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은 청력 상실, 즉 난청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난청을 이롱(耳聾)이라고 하여 이명과 이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한다고 보았습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공기의 진동입니다. 진동은 고막에 도달해서 고막을 떨리게 합니다. 고막의 진동은 내이에서 전기 신호로 바뀐 후 청신경을 통해서 뇌에 도달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주로 음악을 크게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음향 외상성 상해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노인성으로 청력이 저하하여 난청이 발생합니다.
내이의 미로혈관에 장애가 생기면 난청에 이어 이명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유력합니다.
난청이 발생하면 우리 몸은 청력 저하를 보상하려 합니다. 안 들리니 볼륨을 높이는 것입니다. 볼륨을 높이면서 본래 듣고자 했던 소리 외에 기계에서 나오는 배경음도 같이 커지고 그 배경음이 이명으로 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난청을 보상하기 위해서 음향을 최대로 올릴 때 들리는 소리입니다.
청력 상실과 뇌의 불균형한 반응이 결합해서 생긴 것이지요.
뇌에는 신체 지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지도를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면 청각을 담당하는 구역이 있고 청각 구역 안에서는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담당구역이 나뉘어 있습니다. 마치 피아노 건반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청각 피질은 낮은 소리에 반응하는 구역에서부터 높은 소리에 반응하는 구역으로 점진적으로 이어집니다.
난청이 되면 높은 소리를 지각할 수 없습니다. 청각 피질의 지도에서 높은 소리를 받아들이는 구역들은 할 일이 없어집니다. 놀라운 것은 뇌가 너무 부지런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할 일이 없는 뉴런은 스스로 일을 만듭니다. 실제로 소리가 들려오지 않지만 뇌는 소리를 만듭니다. 이 구역들은 점점 무질서하게 작동합니다.
또한 정상적으로 들어오는 약간 더 낮은 소리가 이 구역들을 침범하여 청각 지도에 변형을 일으킵니다.
소리 지도의 이런 비정상적 작동이 이명의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뇌 이상은 청각 피질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의식, 감정, 기억과 연관된 영역들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명이 발생하면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영역의 활동이 증가합니다. 그래서 무척 불쾌하고 고통스럽다는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억과 관련된 부위가 활동하면서 이명이 실제 하는 것으로 기억하게 합니다. 의식적 자각 체계 즉 전전두엽의 활성화로 인해 이명이 의식의 영역에 침범하여 주의를 끌어당기게 됩니다.
청각 피질의 이상 활동이 머리에 새겨지고 그것이 더 주의를 끌면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명과 환상지는 귀에서 오는 정보, 절단된 사지에서 오는 정보가 차단되면서 뇌가 불쾌한 느낌을 동반하는 감각들을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명을 허증(虛證)과 실증(實證)으로 분류합니다. 허증은 약하지만 높은 소리가 지속하며 밤에 심합니다. 점차 이롱(耳聾)이라 하여 청력이 감퇴합니다. 반면 실증은 돌발적으로 나타나며 소리가 크고 낮에 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실증의 경우는 치료가 잘 되는 편이나 허증은 꽤 어렵습니다.
하지만 치료가 안 되는 것이 아니고 꾸준한 치료로 소리가 줄거나 안 들려 안정을 찾습니다. 노화와 관련한 치료를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이명이 불면을 초래하고 불면은 치매가 대표적입니다만 뇌기능의 저하와 면역력의 저하를 가져옵니다. 가벼운 불편이라 여기지 마시고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꾸준히 치료를 받아보십시오.
이명은 귀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뇌를 바꾸는 것입니다. 어디 쉬울까요?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시간이 한참 지나 돌아보면 '신경 안 쓰고 있었네'라고 말씀하십니다.
젊은 분들은 치료 효과가 좋으니 괜히 불편 참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치료하시길 권합니다.
이명은 귀가 아니라 뇌의 문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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