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란 미생물과 게놈의 영어인 microorganism과 genome의 합성어로서 미생물들의 게놈, 미생물들의 유전체를 말하고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는 미생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세상, 미생물총(微生物叢)을 뜻합니다.
미생물과 관련된 이 말은 그 단어의 뜻에 그치지 않고 사람에 대한 관점을 바꿉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끝난 후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로 체내 미생물의 유전자 분석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미생물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입니다. 이 작업을 통하여 우리 체내 미생물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넓어지고 미생물과 인체와의 관계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세균(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고세균과 같은 미생물에 대해 병균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더러운 것이어서 우리 몸에서 씻어내어야 하며 오염을 막기 위해 살균, 소독, 청결이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많은 병이 감염병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무수한 질병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항생제가 주인공입니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는 병에 걸렸을 때 마법 같은 효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항생제는 병을 일으킨 세균만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원인이 되었던 세균이 사라져 질병이 낫지만 우리 몸에 살고 있던 다양한 세균도 죽습니다.
항생제 치료 후 피부가 건조해져 쉽게 갈라지거나 예민해지고 장염과 같은 장에 탈이 나며, 감기 같은 유행성 질환에 쉽게 걸립니다.
항생제로 인해 몸에 있던 세균이 없어진 이후 이런 증상이 나타났으므로 세균이 피부를 지켜주고 장을 보호하며 면역력을 길러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고유한 개체로 생각합니다만 우리 몸은 개체라기보다 하나의 생태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60조 개 정도라 합니다. 그런데 미생물은 500조 마리가 산다고 합니다. 내 몸이 마치 열대 밀림이고 그 안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인간 게놈이 2만 천 개 미만인데 우리 몸 미생물의 게놈 수를 합하면 440만 개입니다. 이러면 우리 몸이 과연 누구 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만약 세균이 병균으로서 몸에 해로운 존재라면 우리 몸에 이렇게 많은 미생물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생물체의 구조나 본능적 행동은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이로움이 있었기에 남아있습니다. 만약 생존에 불리한 형질이 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도태되어 사라집니다. 미생물이 이렇게도 몸 안에 많다는 것은 가끔 병균이 되어 생명을 위협하더라도 그것을 감내하고서라도 유지하는 것이 이롭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진화의 정점에 있다는 오해를 합니다. 생존경쟁에서 성공한 동물이기는 합니다만 부실한 면이 많습니다.
자연에 사는 동물들은 제한된 몇 가지 먹이만 먹고도 평생 삽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몸에서 필요한 것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아 애써 찾아 먹어야만 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유전자가 바뀌어야 합니다. 돌연변이가 발생해야 합니다.
진화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존하는데 필요한 돌연변이가 언제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외부 전문가 미생물에게 임무를 맡기는 것입니다. 미생물들이 우리 몸 안에 있으면서 대신 소화하고 내 몸은 최종 산물을 흡수하는 방법입니다.
우리 몸은 도넛 모양입니다. 피부가 겉이고 피부 안은 속이지만 입에서 항문까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즉 소화기관은 피부처럼 우리 몸의 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내 몸 안으로 물질을 흡수해야 하는 일을 미생물이 담당했습니다. 그리하여 장은 무려 1.5kg이나 되는 박테리아가 우글우글 대는 곳이 되었습니다. 장내벽 세포는 박테리아의 먹이를 분비하고 대장 안에서만 무려 4,000종의 미생물이 삽니다.
미생물이 없을 경우 30%를 더 먹어야 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피부에도 미생물이 득시글거립니다. 손톱 밑에만 1억 마리 가까운 미생물이 삽니다. Covid19가 손으로 전파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손에도 무수한 세균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 부위에 따라 몇 cm 떨어진 곳일지라도 미생물의 종류는 다릅니다. 그 작은 미생물에게 몇 cm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거리만큼이나 멀 것입니다.
미생물이 형성하는 제2의 피부는 인간의 피부 세포와 더불어 인체의 내부를 지키기 위해 이중 보호막을 형성하고, 피부 세포가 만들어 놓은 외부와의 차단막을 더욱 튼튼하게 합니다.
내 몸의 미생물들은 내 몸에 적응한 관계로 마치 지문처럼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미생물총을 가집니다. 그리고 건강한 생태계가 다양한 생물들이 관계망을 이루고 있듯이 내 몸에도 다양한 미생물들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 몸은 내 몸의 마이크로바이오타를 잘 지키기 위해 진화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쓸모없는 흔적기관으로서 맹장염만 일으키는 역할 외에는 기능이 없다고 치부되었던 충수는 미생물의 저장소입니다. 병균의 저장소가 될 위험이 있음에도 인체는 미생물을 위한 공간을 배려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몸의 미생물은 중요합니다.
장염이나 다른 감염병 등으로 인해 설사를 하면 우리 몸의 미생물들이 폭풍처럼 쓸려가 버립니다. 우리의 장은 황폐한 사막이 되어버리나 맹장의 충수돌기에 보관되어 있던 미생물들로 인해 다시 생태계가 복원됩니다.
위장 장애, 알레르기, 자가면역 질환을 비롯하여, 불안 장애, 강박 장애, 우울증, 자폐증 같은 신경 정신과 질환에 이르기까지 비만도 미생물이 영향을 미칩니다.
내 몸을 하나의 우주, 생태계로 파악하고 오랜 시간 인류와 공생해온 내 몸속의 미생물을 소중히 하는 시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안회이중탕(安蛔理中湯)이라는 처방이 있습니다. 기생충이 있어 속이 아플 때 쓰는 처방인데 처방명이 벌레를 죽인다거나 몰아낸다고 하지 않고 벌레를 편안하게 한다고 합니다. 정말 다른 질병관입니다. 병원체와 내 몸의 공존을 바라는 관점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인해 한의학의 지혜를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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