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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김훈 소설 하얼빈 독후감

by Mr. Goodman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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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 김훈 / 문학동네

 

- 목차 -

1.  김훈의 문체 :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객관성 이면의 심연

2.  서사 : 역사적 인물이 드러내는 실존적 고민의 현실성

3. 몇 줄로만 채워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4. 독서 후 잡스런 생각들

 

안중근, 존재할 때는 닿지 않고 닿으려면 없어져야 하는 모순의 삶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안중근이라는 한 인간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다. 세계사적 사건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길 사람이지만 안중근은 이 사건이 없었다면 그의 삶에 대한 자취를 알기 어렵다. 김훈은 역사적 사건 속 안중근이 아니라 안중근이라는 인간의 모습을 훑는다. 그것도 김훈의 생각으로 훑는다.

 

소설가 김훈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김훈의 새로운 소설을 작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읽더라도 김훈의 글이란 것을 알게 된다.

김훈의 글은 다른 작가의 글과 다르다.

 

1. 김훈의 문체 :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객관성 이면의 심연

하나는 문장의 힘이다.

김훈의 문장과 문체는 고유하다. 작가 김훈이 사용하는 단어와 문법이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의 단어와 문법과 다르지 않은데 그의 글을 대면하면 김훈의 글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문장이 간결하다. 또한 감성적 울림의 단어가 드물다. 소설이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데 비해 그 내면의 감정은 절제되어있다. 짧은 몇 마디 객관적 단어로써 이면의 해석을 독자에게 던진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김훈의 문장을 읽는 것은 더디고 힘들다. 항상 몇 번의 호흡을 하고 그의 글은 이어진다.

김훈의 문장이 낯설지 않음은 깊은 이면의 느린 리듬이 경험 속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본가를 찾아 아버지를 뵐 때 두 사람의 대화는 짧았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아픈 데는 없고 애들도 건강하냐?”

.”

먼 길 오느라 힘들다. 건너가 쉬어라.”

 

김훈의 글은 내가 경험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처럼 짧으나 말을 넘어 전한다. 

요즘처럼 끝이 나지 않는 SNS를 통한 말의 홍수 속에서 말 뒤의 거대한 마음을 전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김훈은 그렇게 글을 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말로 전달하기엔 부족한 각자 삶의 이면을 바라본다.

 

2. 서사 : 역사적 인물이 드러내는 실존적 고민의 현실성

김훈의 글이 독특한 또 하나가 바로 무거운 삶의 이면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20세기 초 세계사의 주역 중 한 명이다. 그 주역을 저격한 사건 역시 세계사의 한 장면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안중근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세계사에 등장하고, 한국사에 빠질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렇게 대단한 주역이 역사에서 사라지더라도 역사의 흐름은 도도히 이어진다. 이토 히로부미가 없어졌지만 일본의 팽창과 조선의 식민지화는 거스를 수 없었다. 결국 안중근의 저격은 역사에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않은 살인과 다를 바 없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건 죽었건 제국주의적 팽창의 시대가 이어진다.

 

동양평화론이라는 말이 남았지만 사상가도 아닌 한 개인의 신념은 110년이라는 누적된 역사적 경험에서 초라하다.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사건의 의미는 희석된다. 그리고 훗날 역사가에 의해 덧칠된 명분도 공허하다.

안중근의 신념은 잊히고, 이토 히로부미가 없는 일본은 욱일승천하고,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과 상대방은 그렇게 어쩌면 의미 없이 사라졌다

김훈은 의사 안중근을 보지 않는다.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안중근을 본다.

 

김훈은 젊은 시절 안중근의 공판 기록을 보았고, 안중근에 관한 글을 써야 했다고 말한다. 능력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기에 미뤄둘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숙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생의 시간을 가늠하며 더는 미룰 수 없는 때가 되어 글을 썼다고 한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거의 반백 년 묵혀둔 안중근에 대한 김훈의 생각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익숙한 의사 안중근은 없다.

 

김훈은 우리가 익숙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가 알고 기대하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낯설지도 않다. 바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사람의 이야기인데 보편화된 개인이 아니라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이었고 현의 노래에서는 우륵이었으며 남한산성에서는 최명길과 김상헌이었다. 이들은 보편적 개인의 구체화된 모습이었다.

칼의 노래에서 성웅 이순신은 없다. 임진란의 시기에 자기에게 부여된 무거운 삶을 헤쳐나가야 할 인간의 고뇌가 있다.

김훈에게 있어 삶의 고단함은 역사 속 인물마저도 피해 가지 않는다.

 

소설이 김훈의 소설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실존적 삶의 감각적 생생함과 그 이면의 무거움이 주인공이 누구든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훈의 소설은 역사소설이지만 먹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김훈의 해석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비루함과 고단함으로 이어진다.

 

3. 몇 줄로만 채워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하얼빈은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다.

한 흐름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까지의 여정이고, 다음 흐름은 공판 과정이다.

안중근은 말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청자가 살아서는 말을 전할 수 없었고 청자(聽者)를 죽여야 전할 수 있지만 죽은 자는 들을 수 없다. 안중근의 삶은 극복할 수 없는 모순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모순을 자기의 목숨과 교환하며 해결한다.

 

소설은 안중근에 초점을 맞추지만, 소설의 끄트머리에 몇 줄로 정리된 남은 사람들의 생애가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안중근의 아내, 연해주로 옮겨 오라는 남편의 기별과 도착 후 홀로 남겨졌을 젊은 여인, 딸은 수도원에 보내고, 아들을 다음 해 병으로 잃고, 그 후 말도 통하지 않을 곳에서 살아야만 했던 사람. 그녀의 기록은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미 꽤 살아본 사람으로서 그 짧은 몇 줄은 한 인간이 겪었을 간난에 가슴이 아려온다.

 

4. 독서 후 잡스런 생각들

이 글을 읽으며 유럽처럼 자유롭게 대륙 깊숙이 다닐 수 있었던 환경을 그린다. 그것이 한 때는 당연했으나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불가능한 시대를 살았기에 오랜 시간 당연했던 그 시절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토의 꿈이 바른 방향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꿈은 그들만의 꿈일 뿐이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역사는 지금의 모습으로 흘렀다.

광화문 앞에 조선총독부 그림이 전시되는 일이 버젓이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발전하여 포용성이 넓어진 것인지, 아니면 가치를 상실한 것인지.

 

출판계에서 핫 셀러브리티는 문재인 대통령이라 한다. 문 대통령이 추천하면 그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단다. 이 책도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했다. 안중근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었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길 분이라 생각한다.

작가 김훈은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답했다.

출판사는 들뜬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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