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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1984 최동원 후기, 10주기에 그를 그리며

by Mr. Goodman 20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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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최동원'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많은 사람에게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84년 가을 자신을 하얗게 불태운 최동원에 대한 헌사다.

최동원을 기억하는 이에게 1984년 가을은 찬란함보다 처절함으로 다가온다. 그 처절함 속에서 결국 기적이 일어났고 그 기적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아픈 그리움을 다시 끄집어낸다.

우리 곁을 떠난지 10년이 넘었지만 최동원, 그는 많은 이에게 아직도 찬란히 빛나는 별이다.

최동원이라는 이름은 내 인생에 울림이 크다. 아직까지도 이 이름보다 더 크게 가슴을 뛰게 하는 사람이 없다.

 

- 목차 -

1. 고등학생 최동원을 좋아한 어린 아이

2. 대한민국 에이스가 쓴 가을의 전설

3. 함께 빛나려 했던 밝은 별

4. 불멸

 

1984 최동원, 10주기에 그를 그리며


1. 고등학생 최동원을 좋아한 어린 아이

그를 알게 된 것은 조그마한 병원 대기실에서였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까?  병원 냄새가 짙게 나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중에 신문이 눈에 뜨였다. 최동원에 관한 기사였다. 기사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자 투성이의 글을 유추하며 읽었다. 이미 아버지에게서 이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은 후였기에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남고 18이닝 노히트 노런의 철완.

운동선수로서 보기 힘든 금테 안경을 낀 사람이 강속구를 뿌려댔다.

그때부터 그는 스포츠 면을 장식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사를 읽기 위해 어린아이는 한자 사전을 뒤적였고, 그의 투구폼으로 공을 던질 때 즐거웠다.

 

2. 대한민국의 에이스가 쓴 가을의 전설

박스컵, 차범근으로 당시는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때, 난 이 사람이 좋았고 그래서 야구가 좋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우리나라의 에이스가 되었다. 하지만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음에도 좌절해야 했으며,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을 때 아직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깨는 많이 닳은 상태였다.

 

프로야구가 개막한 1982년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다음 해에야 그는 국내 리그에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리고 1984년의 가을, 그는 전설을 썼다.

1차전 완봉,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 6차전 구원승, 7차전 완투승

방금 글을 입력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기록이다.

그는 그것을 해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삼성이라는 사자 무리 앞에서 거인이 아닌 허약한 조무래기 자기 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한 명뿐.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그가 말했다고 한다. "한 번 해 보입시더."

그리고 했다. 모두가 우승의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호텔 방에서 코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1984년 삼성은 롯데와 한국시리즈를 한 것이 아니었다. 삼성은 최동원과 한국시리즈를 했고 졌다. 최동원이 롯데를 억지로 우승시킨 것이다.

 

1984 최동원 영화 포스터

 

그때는 한국시리즈의 우승이 그의 어깨를 갈아 얻었다는 것을 몰랐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환희에 찼던 순간은 그의 어깨를 제단에 바치고 받은 선물이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기적을 보았기에 아직도 난 그를 잊지 못한다. 1975년에서 2021년이 넘어가는 지금 46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3. 함께 빛나려 했던 밝은 별

프로야구 최고 연봉의 최동원은 최저 연봉의 선수를 위해 선수협을 만들고 확실히 찍힌다. 그리고 트레이드.

이후 최동원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그를 본 것은 최동원이 오늘날 용어로 추격조, 당시에는 패전처리조라고 부르는 역할로 마운드에 올랐을 때다.

내 영웅이 그렇게 마운드에 올랐다. 당시 해설을 하던 하일성 위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옳다면 그 길이 형극일지라도 가는 사람이었다.

대학생들 데모할 때 시위대에 갇힌 적이 있었고, 대학생들과 함께 돌을 던졌다고 한다. 지금도 앞에 있던 전경은 무슨 잘못인가 안쓰럽다.

그는 부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했다. 많이 안타까웠다. 그의 성공을 바라던 내 눈에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가치였다.

그는 그런 길을 갔고 잊혔다.

 

4. 불멸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는 홀연히 곁을 떠났다.

살이 빠진 영웅의 모습을 보면서 중년의 한의사가 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병색이 완연했다.

얼마 후 최동원의 부고를 들었다.

 

이미 나이를 꽤 먹었다.

오래 산 만큼 숱한 것들을 보고 겪었다. 그러나 아직도 어릴 때 안경을 쓱 올리며 마운드에서 강속구로 정면 승부하던 정직한 불꽃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어릴 때는 몰랐으나 나이가 들면서 그의 강속구처럼 정직하던, 불꽃같은 삶을 한낱 어린 치기로 폄하했음을 알고 미안했다. 

 

작년 NC가 우승을 했을 때, 기뻤다. 우리 팀이 드디어 우승을 해서 좋았다. 그리고 구단주가 최동원의 영전에 우승컵을 바치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한국시리즈는 학력고사를 얼마 앞두고 치러졌다. 

집에서 1차전에서 7차전까지 1회도 빼먹지 않고 다 봤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대단하다. 그런 아들놈을 놔두셨으니.

최동원 그 이름을 다시 새기며 영원한 전설의 불꽃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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