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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입양 후기 1 - 구조

by Mr. Goodman 202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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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던 새끼 길고양이를 만나 인연이 되어 같이 살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2017년 7월 하순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아내로부터 사진이 첨부된 문자가 와 있다.

동물병원에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입원시켰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파트 출입구 옆 조그마한 화단에 새끼 고양이가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집중호우가 내릴 때인데도 그대로 있어서 봤더니 아직 숨은 붙어있었지만 곧 죽을 것 같았단다. 차마 발을 뗄 수 없어 박스에다 넣어 동물병원에다 입원을 시켰다고 전한다.

 

구조 후 동물병원에서 대니
그래도 살려고 먹으려 애쓰는 모습이 측은하다
구조 후 혼수상태의 대니
구조 후 동물병원에서 혼수 상태의 훗날 대니
아사 직전 뼈만 남은 대니
아사 직전 못 먹어서 뼈만 보인다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4개월 정도 되었는데 보통 이 시기 체중이 1.3kg이나 이 녀석은 0.7kg밖에 안 되었다. 살아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래도 손에 밥을 묻혀 입 가까이 갖다 대니 먹으려고 했고 많이 불쌍했단다. 수액을 맞히고 하루 경과를 보기로 한 다음 나왔다. 어떡하려고 그러냐는 내 말에 눈에 밟힌다는 대답을 한다.

 

고양이를 본 그 순간 성경 창세기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나는 길에서 태어난 생명이 자연의 선택을 못 받았다며 안 되었다는 마음이 조금 들었겠지만 냉정하게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손을 내밀었다. 태도에서 차이가 크다. 

그 고양이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 같으니 4개월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래도 죽을 때 편한 기억을 가지게 해 준 아내에게 존경심이 인다.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지만 살아나면 어떡할지 모르겠다. 그때 생각할 일이긴 하다. 우리 집에 고양이의 먹잇감일 햄스터가 멍 때리며 잘살고 있으니 같이 산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살았으면 좋겠다만 그 경우 뒷일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무작정 길냥이를 병원에 둘 수도 없어서 만약 안 죽는다면 다음날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올 생각이다. 밤을 못 넘기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리라 생각했는데 토요일 연락이 없다. 이상하게 고양이가 집에 올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느끼며 일찍 퇴근했더니 아내가 동물병원으로 오라고 한다. 고양이는 살아있었다.

 

그 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이었다. 그렇게 못생기고 더러운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하필이면 이런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하다니! 다시 길에다 놔 둘 수는 없는 일이고 병원에다 두는 것도 안 될 일이니 데리고는 가는데 정신이 사납다.

 

더럽다. 얼굴에는 땟국물이 흐른다. 눈과 코에는 고름이 가득하고 눈을 떠도 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사팔뜨기처럼 눈동자가 바깥으로 움직여 마치 눈이 없는 것 같다. 일어서지도 못 하고 옆으로 누워만 있을 뿐이다. 살이 하나도 없다 보니 얼굴이 고양이 같지 않고 사막여우 같다. 고양이 미라를 보는 것 같다. 말라 뾰족한 얼굴 때문에 유난히 커 보이는 쫑긋한 귀만 살아있는 고양이임을 알려준다.

 

이를 어쩐다? 하수구에서 고양이 사체를 건져올려 집으로 갖고 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혐오보다는 측은함이 앞서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생각을 지배한다. 집에 가는 내내 또 집에 가서도 조그마한 소리로 "예쁘구나. 나아라. 건강해라. 잘 살거라."와 같은 말을 계속해 주었다.

 

아내와 아이가 주사기로 약을 먹이고 주사기로 죽을 만들어 입에다 넣어주었다. 물수건으로 부족하나마 더러운 털을 좀 닦아주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가느다란 몸통이 들썩인다. 폐에 물이 찼는지 호흡 끝에 기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책방에다 두었는데 몸도 가눌 힘이 없는 녀석이 아기 울음 같은 고양이 소리를 계속 낸다. 옆집에 들리면 미안하다. 병원을 나설 때에도 수의사는 살 것 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산다면 어떡하지? 집에 햄스터가 있는데.

같이 산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고양이의 모습을 갖춘 다음 입양을 보내면 되겠다. 가까운 사람에게 알아보고, 다산 콜센터에다 문의를 해도 된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는 번갈아가며 밤새 앵앵거리는 고양이를 돌봤다. 

 

일요일 아침 고양이를 보러 갔더니 걷는다. 이게 내 쪽으로 온다. 눈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풀어진 채로 덜덜 떨면서 내게로 온다. 고양이 언어를 모르기에 마치 좀비를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이것 뭐야?' 고양이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 벽을 보고 한참 서 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내 시야가 차츰 넓어지면서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오줌을 누고 있다. 누런 오줌을 패드 옆에다 싼다. 그러더니 역시 비틀거리면서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쓰러진다. 이때 든 생각이 웃기게도 슬램덩크의 정대만이었다. 체력이 바닥났지만 그래도 슛을 쏘아대고 탈진해 버렸던 불꽃남자 정대만. 

움직이지도 못하기에 아예 화장실 구색을 맞춰놓지 않았다. 오줌을 닦고 방을 걸레질한 후 발바닥도 닦으면서도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살려나?'였고 기뻤다. 오줌 싼 주변에 패드를 깔고 햄스터 화장실에 넣어주는 우드 펠렛을 박스에 담아 임시 화장실을 만들었다.

 

밥 먹이고 약 먹이고 안약 넣는 것을 제외하면 자라고 계속 문을 닫아 두었다. 햇빛이 안 들어오는 방이라 어두운데 불도 켜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가 참 신경을 쓴다. 아내와 아이는 고양이 돌보느라 밤을 샜다. 더러워서 만지지도 못하고 장갑을 끼고서 잠깐씩 들어가 상태를 보고 이런저런 말을 속삭이다 나왔다. 그리고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릴까봐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로 하루 종일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었다.

 

고양이가 자는 것을 보고 살 것이 있어 저녁 먹기 전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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