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우리 가족 한방 주치의
일상스케치

길고양이 입양 후기 2 - 회복

by Mr. Goodman 2021. 2. 3.
반응형

2017년 고양이와 같이 살게 되는 때의 이야기입니다.

길고양이와 첫만남 이후 기록입니다.

 

고양이는 박스에 환장한다고 한다.

이런 정보들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재미있어 눈에 걸려든 내용이라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는 것을 보면 고양이를 기쁘고 편안하게 해 주려면 박스에 넣어두면 될 것 같다.

 

집에 온 대니 차마 만질 수 없어 장갑을 껴야만 했다

 

집에 데려와 박스에다 따뜻하라고 수건까지 넣어두었는데 일어나지도 못하는 놈이 책상 밑 어두운 곳으로 간다. 거기서 마치 죽는 것을 기다리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호흡이 많이 거칠다.

일요일이 지나면서 호흡이 차츰 안정을 찾는 것이 느껴진다. 자그마한 흉곽이 들썩이던 것이 많이 잦아들었다. 살아날 것 같다.

 

책상 밑 어두운 곳에 숨어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일요일 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임시로 만들어둔 화장실에다 소변을 보았다. 기특하다. 온 가족이 잘했다고 예쁘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잡아서 억지로 입안에 주사기를 물려 밥과 약을 먹였다. 발톱이 나온다. 힘이 좀 돌아오나 보다. 가소롭다.

이 녀석은 비사교적인 놈인가 보다. 그래도 개냥이기를 바랐는데. 

 

점점 고양이가 되어 간다. 밤 늦게는 앉기까지 한다. 눈엔 눈곱이 가득한 데다 눈동자가 풀려 대부분 공막만 보이지만 조그마한 녀석이 감동을 준다. 가족 모두가 기뻐한다. 죽어가는 것을 살렸다는 뿌듯함이 든다. 이제 이 고양이는 안 죽을 것 같다. 나중에는 자기 발을 그루밍한다. 고비를 넘기고 기력이 돌아오자 회복이 시간 단위로 나타난다. 

 

발바닥과 다리에는 여기저기 상처, 눈은 풀려 있었다

 

뜻하지 않게 우리집에 있게 된 이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세상모르고 밤만 되면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고양이가 살아나자마자 강하게 든다. 그 햄스터는 고양이 냄새도 못 맡는 건지 불안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케이지 청소한 후에 보이는 까칠함마저도 없다. 그렇다 보니 더 신경이 쓰인다.

 

월요일 아침은 고양이 오줌 싼 모래 치우고 방 걸레질 하는 것으로 시작이다. 출근하는데 평소보다 몸이 많이 무겁다. 지하철역까지 아내를 데려다주며 참 좋은 일 했다는 말을 해 주었다. 작년 이즈음 임종이 가까웠던 장인어른을 보살핀 경험에 비춰볼 때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가볍게 넘긴다.

아이는 병원에 데려가 기생충검사, 예방접종과 필요한 치료를 하고 나와 아내는 몇몇 물건을 준비하기로 했다.

 

휴가가 한창인 요즘 한의원은 꽤 한산하다. 고양이에 대해 폭풍 정보 검색에 들어간다. 그리고 계속 걱정이 쌓인다. 개와는 달리 사람이 고양이에 맞춰야 하는가 보다. 집안이 온통 털이고, 가구, 벽을 긁어놓을 것 같다. 또 집안에 남아있는 물건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발정기 때 냄새도 심한가 보다. 계속 청소해야 하고, 고양이가 만질 수 없게 모든 물건은 박스에 넣어두어야만 한다. 망가지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하나 보다. 고양이에게 우리의 삶을 맞춰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 햄스터는 어쩐다?

 

고양이 몸짓 언어 공부, 고양이 소리 언어 공부, 고양이 제대로 안는 법, 고양이 기르는 법, 고양이 기를 때 필요한 물건, 고양이 대변 갈아주는 대통령 사진에 있던 고양이 화장실 등등 아무튼 인터넷에서 걸리는 것은 읽어보고 머리에 넣을 만한 것은 넣어두었다. 부담 없는 이런 공부는 즐겁다.

 

고양이를 기르는 환자분에게 경과를 말씀드렸다. 걱정이 지나치다면서 그냥 웃는다. "안 그래요."

아무튼 이 녀석 살을 찌워서 얼굴을 고양이답게 만든 후 좋은 주인 찾아서 보내야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도 고양이가 있으니 참 좋다. 

 

놀랍게도 고양이가 갖고 있는 전염병이 하나도 없다. 어미에게서 전염되는 것도 있다는데 그런 것도 없이 깨끗하다. 수의사선생님은 천운이 있다고 놀라워한다. 대신 진드기가 귀 안에 그득하다. 구충제 먹이고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다. 의료보험도 안 되는 길고양이에게 돈을 꽤 쓴다. 약을 먹인 후에 조금 마음이 놓인다. 장갑을 벗고 만져 본다. 깨끗하다니까 나도 마음이 많이 풀리나 보다.

 

일요일 저녁 먹으면서 고양이 이름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난 이름을 짓는 것에 반대였다. 이름을 짓는 순간 그 녀석이 내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인연이 강하게 맺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슐라 르 귄의 책을 보면 이름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다. 이름이란 그 존재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름을 지으면 그 존재 자체가 내 안에 들어온다. 더 이상 무관심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이 고양이에게 뜻하지 않은 보호의 책임을 안게 된다.

 

아이의 제안으로 '브레드'라 부르기로 했다. 식빵 굽는 행복한 고양이가 되라는 바람으로 이렇게 지었다.

 

밤늦게 마치는 아내를 데리고 이마트에서 고양이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마련했다. 앞으로 이 녀석이 사용할 물건은 시간을 들여 행태를 파악한 후 인터넷에서 사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니 꽤 고양이 같다. 이제는 호흡이 안정적이고 더 이상 수포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나름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며 살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경계를 풀고 사람 주변을 스쳐 지나다닌다. 깨끗하다니까 나도 거부감이 덜 하다. 

 

사료 봉지 아래쪽으로 머리를 집어 넣는다. 보니 구멍이 나 있다. 밤 사이 구멍을 내고 거기서 사료를 먹었나 보다. 자꾸 먹으려 한다. 아침에 보니 눈도 많이 돌아왔다. 이 고양이의 처리에 대해 걱정하는 내게 아내는 "우리가 키우면 되지."라고 말한다. 이 말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 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고양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키는 것도 이 녀석에게 스트레스를 또 줄 것 같았다. 공공기관에다 의뢰하면 거의 안락사시킨다고 하니 그것도 못할 짓이다.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와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오늘 날자로 이 녀석은 확실히 살았다. 

 

괴사된 꼬리 끝이 보인다 결국 수술로 잘라내야만 했다

 

한의원에서는 종일 고양이 검색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상하다. 고양이란 것이 무엇인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무작정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가 한 명 집에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난 무서웠다. 본능적일 것이라 여겼던 아빠의 감정이란 것은 없었다. 아내를 만나 사랑할 때 사랑해야한다는 생각 없어도 그냥 좋았고, 사랑이라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아빠가 되었고 아이를 볼 때 그렇지는 않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거룩한 무엇이 나타나리라 기대했으나 그런 것이 없었다. 내 아이니까 키워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고, 그것이 자기 몸 건사하기도 헤매는 연약한 한 인간에게는 부담이었다. 좋은 줄 몰랐다.

 

그러나 고양이는 왜 이럴까? 어디 가서 "나도 고양이 있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보고싶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이상하다.

 

<관련글>

 

길고양이 입양 후기 3

 

길고양이 입양 후기 3

2017년 7월 하순 길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온 이후 며칠간의 변화 일기입니다. 1편, 2편에 이은 세번째 글입니다. 화요일에도 아이는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왔다. 아내는 예상치 못한 카

kmshani.tistory.com

길고양이 입양 후기 4

 

길고양이 입양 후기 4

2017년 7월 하순 새끼 길고양이를 구조 후 입양하였습니다. 어느덧 가족이 된 인간과 고양이라는 다른 종끼리의 공존에 관한 글입니다. 입양 직후 며칠 간의 기록인 1편, 2편, 3편에 이은 현재까지

kmshani.tistory.com

길고양이 입양 후기 1

 

길고양이 입양 후기 1 - 구조

죽어가던 새끼 길고양이를 만나 인연이 되어 같이 살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2017년 7월 하순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아내로부터 사진이 첨부된 문자가 와 있다. 동물병원에다 죽어

kmshani.tistory.com

 

행복한 힐링, 고양이

고양이 대니의 영상입니다. 행복한 느낌이 몸을 감쌉니다. 대니는 다섯 살이 넘은 어른인데 아기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나이값을 못하지만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고양이 골골송 듣고 가세요.

kmshani.tistory.com

 

고양이에게 감정이 있을까?

저 무심한 고양이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질까? - 목차 - 1. 고양이의 눈병 2. 스트레스성 질환인 칠정상(七情傷)이 고양이에게도 생기는가 3. 느낌(feeling)과 감정(emotion) 4. 오해인 것을 알지만 같은

kmshani.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