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하순 길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온 이후 며칠간의 변화 일기입니다.
화요일에도 아이는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왔다.
아내는 예상치 못한 카드값에 놀란다. 적다고 할 수 없는 돈이 자꾸 나간다.
병원에서의 검진 결과 이 고양이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장이 기형이다. 직선이어야 할 장의 끝부분이 굽어있다. 또 천추와 미추도 기형이다. 늑골 앞부분에 하얀 것이 많아서 심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수의사선생님도 처음 보는 사진이라고 한다. 아무튼 호흡도 괜찮고 심장도 잘 뛰고 있으니 이상이야 없겠지만 뭔가 어리숙하다.
이런 것을 고려했을 때 어미가 독립을 시킨 것이 아니라 어미로부터 버림받았을 것이라 한다.
어린 것이 일찍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썼다. 그러다 결국 굶어 죽기 직전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마음이 아린다. 오늘은 방에서 나와 아이 방에도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리고 손만 주면 손이 베개인 양 고개를 옆으로 돌려 손에다 자기 머리를 문지른다고 한다. 애교를 많이 떤다고 알려준다. 자기를 살려주었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퇴근 후 아이와 외식을 하는 중에 들은 이야기라 고양이가 갑자기 보고 싶어 진다.
집에서 보니 이 고양이가 그 고양이인가 싶을 정도로 고양이가 되었다. 많이 기쁘다. 기형인 발톱도 깎아 조금은 편안하리라. 관장을 한 후에 대변도 제대로 본다. 이젠 대소변을 모두 갈아주게 되었다. 고양이 대변이 숙지황 닮았다. 한의사만 알 표현이다.
알고 봤더니 이 녀석은 개냥이다. 들어가니 좋다고 자기의 체취를 묻힌다. 내 주변을 계속 스쳐지나다닌다. 고양이 언어를 조금 공부했다 보니 이 고양이의 의도가 읽힌다. 거기다가 꽤 수다쟁이다. 아저씨 말 한마디에 냥냥거린다. 거기다 끊임없이 드르륵 소리가 난다. 마치 모터가 속에 있는 것 같다.
눈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호박색 홍채가 예쁘다. 수시로 밥을 먹는 것이 그동안 부족했던 영양분을 빨리 보충하고자 하는 몸의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살금살금 그르륵거리며 돌아다니는데 너무 좋다. 눈이 보고 싶어 바짝 엎드린 자세로 고양이를 관찰한다. 고개를 돌린 고양이의 턱선과 수염이 너무도 매력적이다. 윤기 있는 털과는 아직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예쁘다. 커다란 인간이 고양이보다 눈의 위치가 더 낮다. 인간이 고양이에게 이렇게 하니 고양이가 건방을 떨게 되나 보다.
개는 인간이 밥도 주고 보살펴주기에 인간을 신으로 여긴다. 그러나 고양이는 인간이 밥도 주고 보살펴주기에 자기가 신이라고 여긴다.
평소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나 고양이에게 무릎을 꿇는 나를 본다.
밤늦게 아내가 왔다. 아내를 반긴다. 머리를 문지르며 자기 체취를 묻히더니 쓰러지듯이 아내 옆에 눕는다. 소위 발라당 자세를 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같다. 이로써 이 고양이는 자기의 신자를 세 명 확보했다.
진드기도 없어졌고 고양이는 자기의 나름 깔끔 떤다. 고양이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일어나자마자 대소변 치우고 방 걸레질을 하고 퇴근 후 이를 반복한다.
수요일엔 드디어 병원도 안 가고 정상적인 집고양이 생활로 접어들었다. 고양이 식빵 자세가 보기와는 달리 그다지 행복한 자세는 아닌 것 같아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이제 이 녀석의 이름은 '다니엘'이 되었다. 애칭으로 '대니'다.
아내는 가톨릭 성인의 이름이나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자꾸 말한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 대니다. 이 녀석이 똑똑한 것 같다.
대니는 아직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너무 조심스럽다. 기형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근육이 덜 발달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중심 잡는 것도 어설프고 좁은데 들어가는 것 역시 어설프다. 꼬리는 괴사 된 상태인데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가장 좋은 것은 괴사 된 끝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직 염증이 꼬리 일부분에 남아 있다.
이 녀석이 천수를 누리게 해 주고 싶다. 이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쯤 나는 노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중년을 지나고 있다 보니 이 녀석을 들이면서 내가 존재할 시간의 양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나도 몰랐는데 남아있는 시간이 무한대가 아니라고 유한의 끝도 가물가물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살고 있나 보다. 삶을 살아가는 내 인식의 틀을 다른 각도에서 고찰할 기회를 가진 셈이다. 살아가는 태도가 겸손하고 아름답다고 문득 느낀다.
최근 들어 도덕, 윤리란 것이 논리적으로 규명될 성질이 아니라 결국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녀석을 살리면서 이를 다시 확인한다.
평소 소파에서 사발에다 강냉이 튀긴 것을 가득 담아 옆에 두고서 책 읽는 것과는 달리 고양이가 있는 책방으로 간다. 책상 앞에 앉지 않고 누웠다.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마저 읽는다. 일하느라 집중하면 고양이는 이 인간이 심심한가 싶어 놀아주러 온다는 글을 많이 봐서 이놈이 자기 발로 오기를 바라고 한 행동이다. 아니나 다를까 또 다가온다. 이제는 소리도 내지 않고 와서 내 몸 여기저기를 자기 몸으로 문지르더니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목덜미를 만지작거리자 가르륵 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고개를 툭 떨구고 잠에 빠져든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대니는 대화를 하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르릉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기분은 좋을 텐데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소리가 안 난다. 우리 집처럼 조용한 집에는 맞춤 고양이지만 걱정되기도 한다.
목요일 또 인터넷 검색을 해 본다.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없어 영어로 검색을 한다. 기형과 병으로 인한 신경 손상이 원인이었다.
기형이 원인인가 보다. 제대로 된 소리를 못 내다보니 어미로부터 버림받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처음에는 여리지만 소리를 냈는데 아마 자기 나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나 보다. 이 녀석은 참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약을 먹이는 아줌마와 누나에게는 삐진 하루를 보내고 청소해주는 아저씨를 만나니 반가웠나 보다. 난리다. 고양이 대소변 치우면서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니의 폭풍 애교 보은도 끝이 나고 아내와 아이에겐 조금 삐진 모습을 보인다. 학습을 통해 고양이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저씨에겐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꼬리를 바짝 세워 살랑살랑거리고 아저씨 주위를 온통 비비적거리며 돌아다닌다. 햄스터와는 너무 다르다.
청소할 때 고양이의 털을 발견했다. 이제 빠지기 시작하려나? 고양이는 자기 방에서 벗어나 조심스레 거실 입구까지 나와 다소곳하게 앉아서 사람들의 거동을 살피다 들어간다. 또 책꽂이 낮은 칸의 책 위 공간에 들어가 쉬기도 한다.
슬슬 고양이도 우리 가족도 새로운 생활에 서로를 맞추고 있다.
<관련글>
길고양이 입양 후기 4
2017년 7월 하순 새끼 길고양이를 구조 후 입양하였습니다. 어느덧 가족이 된 인간과 고양이라는 다른 종끼리의 공존에 관한 글입니다. 입양 직후 며칠 간의 기록인 1편, 2편, 3편에 이은 현재까지
kmshani.tistory.com
길고양이 입양 후기 1
죽어가던 새끼 길고양이를 만나 인연이 되어 같이 살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2017년 7월 하순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아내로부터 사진이 첨부된 문자가 와 있다. 동물병원에다 죽어
kmshani.tistory.com
길고양이 입양 후기 2
2017년 고양이와 같이 살게 되는 때의 이야기입니다. 길고양이와 첫만남 이후 기록입니다. 고양이는 박스에 환장한다고 한다. 이런 정보들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재미있어 눈에 걸려든 내용이라
kmshani.tistory.com
행복한 힐링, 고양이
고양이 대니의 영상입니다. 행복한 느낌이 몸을 감쌉니다. 대니는 다섯 살이 넘은 어른인데 아기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나이값을 못하지만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고양이 골골송 듣고 가세요.
kmshani.tistory.com
고양이에게 감정이 있을까?
저 무심한 고양이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질까? - 목차 - 1. 고양이의 눈병 2. 스트레스성 질환인 칠정상(七情傷)이 고양이에게도 생기는가 3. 느낌(feeling)과 감정(emotion) 4. 오해인 것을 알지만 같은
kmshani.tistory.com
'일상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음 메인에 글이 노출되다 (0) | 2021.02.10 |
---|---|
길고양이 입양 후기 4 - 같이 살기 (5) | 2021.02.08 |
길고양이 입양 후기 2 - 회복 (4) | 2021.02.03 |
길고양이 입양 후기 1 - 구조 (6) | 2021.02.02 |
싱어게인 김준휘, 정홍일 감상 (0) | 2020.1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