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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

길고양이 입양 후기 4 - 같이 살기

by Mr. Goodman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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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하순 새끼 길고양이를 구조 후 입양하였습니다.

어느덧 가족이 된 인간과 고양이라는 다른 종끼리의 공존에 관한 글입니다.

입양 직후 며칠 간의 기록인 1편, 2편, 3편에 이은 현재까지의 이야기와 사진입니다.

이전 글을 읽은 분들께서 요즘 대니의 모습에 대해 궁금해하셔서 사진을 많이 올렸습니다.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엉겁결에 고양이와 같이 살게 되었다. 이것을 묘연이라 하나 보다.

어린 고양이가 마음을 열고 우리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들어오면서 대니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 구성원이 되었다.

 

고양이와 같이 살기 위한 쇼핑으로 분주했다.

마트에서 파는 사료를 저렴하게 구입하려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선 순간 고양이 용품의 다양함에 놀랐다. 사료와 간식도 구분 못 하던 터라 일일이 인터넷을 뒤지며 배워야 했다그리하여 낚싯대를 시작으로 고양이 물건을 구입하고 대니의 취향을 확인하고 다른 것을 진상하는 집사 노릇의 무한 루프가 열렸다.

천 일을 낚시해야 집사가 된다

동물병원에서 받은 사료에 새 사료를 점점 더 많이 섞으면서 사료를 바꾸었다. 캔 사료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먹여봤으나 입맛이 까다롭다.

아내가 가끔 소금기를 뺀 삶은 고기를 준다. 그러나 만들 때만 한껏 기대에 차 있을 뿐 막상 많이 먹지 않는다. 대니는 닭고기만 조금 먹을 뿐 생선에는 눈도 주지 않는다. 우리 집은 고양이마저 비만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이 식탁에 앉으면 자기도 자기 자리에서 오드득 밥을 먹는다. 먼저 다 먹고 느긋하게 앉아 밥 먹는 인간 동물을 바라본다.

간식 기다리는 대니

우리가 로또를 맞은 것이 대니는 목욕하는 고양이다. 같이 살게 된 얼마 후 아이가 목욕을 시켰다. 잔혹극을 쓰리라 굳은 마음을 먹고 샤워기를 들었는데 나가고 싶다고 야옹거렸을 뿐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었지만 고양이 대니에게 목욕은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인간이 욕실에 들어가고 거기서 물소리가 나면 대니는 문 앞에서 걱정스러운 듯 지키고 있다.

목욕한 대니

목욕한 날 퇴근 후 만난 대니는 이미 무너진 마음의 경계에 이어 내 몸의 경계마저 없애버렸다. 그날부터 시작한 코뽀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콧잔등을 톡톡 치면서 뽀뽀라 말하고 대니의 코에 내 코를 살짝 갖다 댄다. 대니는 받아준다. 응큼한 아저씨가 경계를 넘는다. 양 볼로 슬그머니 옮아가 뽀뽀를 해본다.

뽀뽀가 허용된 이후 매일 고양이 얼굴과 목을 뽀뽀로 도배한다.

고양이는 귀 뒤 취선에서 나오는 자기 냄새를 자기 영역에다 묻힌다. 대니도 벽이나 가구에 몸을 문지르며 돌아다닌다. 그런데 이 녀석 입장에서 분명 냄새가 나긴 나는데 남자 인간의 경우엔 얼굴 저 높은 위치에서 자기 냄새가 날 것이다.

 

기상 시간이 자기 맘대로인 대니는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서 앞다리, 다음에는 뒷다리를 쭉 스트레칭한다. 그리고 그날 기분에 따라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발라당을 한다. 다음에는 뽀뽀 시간을 갖고 과하다 싶으면 그만외치며 슬쩍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발코니 밖을 구경한다.

출근하기 직전 대니는 아이 옆에 가 다시 눕는다. 뽀뽀해 주고 나선다.

집에 돌아오면 대체로 잔다. 내가 찾아가 문안 뽀뽀를 한다이 녀석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나 싶어 서운하기도 하나 아이나 아내가 늦으면 옹알대며 기다리는 것이 보인다.

이것도 박스라고

 

대니가 어릴 때 인간의 오해로 냥펀치를 맞았다. 팔에 할퀸 자국이 많았다. 발톱을 넣고 냥펀치 날리기를 배우지 못한 관계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러다 한번은 입술을 할퀸 적이 있다. 야단을 쳤다. 알아들었는지 신기하게도 입술과 얼굴에는 냥펀치를 날리지 않는다. 자기가 싫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하지만 지킬 선을 지킨다. 그리고 캣초딩 이후 사람에게 발톱을 보인 적이 없다. “아파하면 그러니 하지 말랬지?”라고 말하는 듯 옹알거리다 그친다.

단순한 짐승일 뿐인데 이 짐승과 사람을 대하듯 서로가 서로를 존중한다.

 

고양이의 쓰담쓰담

고양이는 인간의 영역으로 인간도 고양이의 영역으로 점점 들어가 섞인다. 집 어디든 고양이에게 금단의 장소는 없다. 그리고 발라당한 배를 만지고 핑크 젤리 냄새를 맡아도 대니는 허락한다.

 

캣초딩 때 어느 날 안 보여 찾았더니 장롱 위 안쪽에 있다. 온 집에 먼지를 흩뿌렸을 것이다. 밤에 우다다도 심해지고 옹애거리는 소리도 많다. 아무래도 중성화를 해야 할 것 같다. 수술 후 넥카라를 쓴 고양이는 안쓰럽다. 핥아서 실밥이 터질 수 있어 넥카라를 씌우고 있어야 한다. 대니는 스스로 그루밍을 못하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꼬리 괴사된 것이 낫지 않아 수술을 해야 했다. 대니의 꼬리는 짧다. 고양이가 마법사의 지팡이 같은 모양으로 꼬리를 움직이며 다가오면 환상적이다. 대니는 그것을 잃었다. 대신 별명을 얻었다. 하찮은 꼬리라고 하꼬다. 놀릴 때 쓴다.

꼬리 수술한 대니 데리고 와 얼마 되지 않아 수술했다

 

캣초딩 때는 내 옆에서 잠을 잤다. 발을 펼 수 없어 일어나도 피곤했다. 그러더니 영원한 뮤즈인 누나 옆에 자기 자리를 잡았다. 이 고양이는 아이가 너무 좋은가 보다. 대니의 기본적인 울음이 야옹이 아니라 누나. 아이가 허밍으로 누나라고 말할 때 그대로다. 신기한 고양이다.

이 외에 다양한 발음을 구사한다. 혀로 입 주위를 닦으며 소리를 낼 때는 리을 발음이 난다. “롤롤롤 랄뢀루아~~” 안 웃을 수가 없다.

누나바라기 대니

그런 고양이이지만 밥이 없거나 화장실이 안 치워져 있으면 호통을 친다. 지킬 것은 지키라고 주의를 준다. 치즈태비들이 말이 많다고 하는데 대니는 확실히 말이 많은 고양이다.

 

성묘가 된 대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단 누나가 깨어있을 때는 졸린 눈을 하고서도 우리 아이 뒤를 따라다닌다. 아이에게 가만히 안겨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 가끔 내가 안는 것을 허락할 때도 있다.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 순위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을 때는 최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저런 자세로 잘도 잔다
깊은 잠에 빠졌다. 침까지 흘린다

 

아직도 고양이를 모른다.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드는 미지의 존재가 고양이다. 그러니 그 매력은 줄어들지 않고 더해진다. 거기다 같이 살아온 시간이 쌓이면서 인연의 실타래가 굵어져 대니를 바라보는 시선은 가족을 대하는 듯하다.

불이 났다며 대피하라는 방송이 있었다. 가장 먼저 챙긴 것이 대니였다. 놀란 대니가 이동장에 들어가려 하지 않아 배낭에 구겨 넣고 대피했다. 어느새 이 고양이가 가장 귀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고양이의 생각에 관한 생각
고양이의 눈동자엔 우주가 담겨 있다
햇살과 대니
햇빛과 대니
대니 증명사진

대니는 경계심이 극도로 심한 고양이어서 우리 가족 이외에 다른 사람이 오면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덩치가 있는 남자는 두려워하는 것이 눈에 띈다. 택배 기사님이 문을 열면 숨기 바쁘다.

새끼 때 학대를 당해 결국 치유되지 않을 트라우마로 남았나 보다. 지금도 내가 겨울 외투를 입고 어깨를 부풀리면 대니는 도망간다.

이것은 결코 고치지 못할 것 같다.

다른 고양이를 들일 마음의 여유는 있음에도 경계심 강하고 소심하며 집착도 보이는 성격인 대니 때문에 접는다.

 

고양이와 인연을 맺는 사람들은 자기 고양이를 넘어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에 애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거기다 길고양이의 척박한 현실을 접하면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 사단의 하나란 것을 몸으로 알게 된다.

어느덧 알고 지내는 길고양이가 늘었다. 마치 사람을 대하듯 인사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다. 무수한 시간 속에서 또 드넓은 공간 속에서 서로를 만났다는 것은 커다란 인연이다. 비록 종이 다른 존재들이지만 인간이 만든 사막과도 같은 메마른 환경에서 살아남는 고양이가 기특하고 힘내라는 격려를 하게 된다.

어쩌면 이 격려는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격려와 위로일지도 모른다.

대니의 메롱 행복한가 보다
책과 고양이 행복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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