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살지 못하는 작은 동물 햄스터.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동물은 많은 사랑을 주고 또 많은 사랑을 받고 얼마 있지 않아 떠난다.
그리고 교감의 깊이만큼 긴 여운을 남긴다.
- 목차 -
1. 동물과의 추억
2. 로보로브스키 햄스터
3. 상냥한 햄스터, 펄
4. 이별의 슬픔은 크기와 무관하기에
햄스터와 이별
1. 동물과의 추억
사람을 제외한 다른 생물을 사람과 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개는 개고,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이란 점에서 그 녀석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 생명체로써는 평등한 이 동물이 자기 본성에 맞게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개였다.
어릴 때 집은 마당이 아주 넓었다. 당시 좀 살던 집에서는 셰퍼드를 기르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 같다.우리 집도 셰퍼드를 길렀다. 사납게 짖어대던 동네 개들과 달랐다. 조그마한 아이가 그 커다란 개의 목을 두 팔을 벌려 안으면 그 큰 개는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돌아보면 그 녀석이 나를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도 그 개에 대해 너무 좋은 기억을 갖고 있어서 작은 개에게는 눈길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개를 방 안에 들이거나 하는 일은 못하고 있다. 마당이 없기에 이들을 기를 생각을 못한다.
2. 로보로브스키 햄스터
항상 큰 개를 기르고 싶었지만 주거환경의 변화로 인해 더 이상 동물을 기를 수 없었다.
그러다 햄스터를 몇 차례 길렀다. 아이가 과외 활동하면서 받아온 녀석이 처음이었다. 로보로브스키 종이었고,그 녀석의 모토는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였다. 내게 밥을 의지하지만 그래도 밥만 의지할 뿐이었다.
로보로브스키 햄스터는 등이 갈색인 자그마한 햄스터이다. 흔히 보는 햄스터다.
이 햄스터는 작은 것이 참 예쁘다. 하지만 사납다.
사람과 교감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아무리 예뻐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먼 동물이다.
3. 상냥한 햄스터, 펄
햄스터는 그런 특성을 가진 동물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다음에 갖고 온 펄 종은 달랐다. 펄이라는 이름처럼 등이 하얗다.
이 녀석들은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생긴 것은 햄스터 치고 아주 못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듬뿍 사랑을 받은 뒤 천수를 누리고 갔다. 방가방가 우리 친구 햄스터였다. 더군다나 이 녀석들은 영역 다툼도 하지 않고 온순하게 두 마리 모두 평화롭게 살았다.
4. 이별의 슬픔은 크기와 무관하기에
그 후 케이지가 오랜 기간 휑뎅그레 비어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햄스터를 사자고 해서 이번에는 이마트에서 마치 물건을 사듯이 사 왔다. 그 녀석이 백설스화와 미서다.
햄스터가 사람과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녀석들이다. 개를 보는 듯했다. 이. 녀석들과는 아이보다 내가 더 놀아주지 않았는가 싶다.
백설스화는 여름이 되기 전 떠나고 미서도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이 두 녀석들도 천수를 누렸으리라 생각한다. 이 녀석들은 죽음을 앞두고 살이 쏙 빠져 노화가 눈에 띄었다.
백설스화는 탈장이 일어나고 얼마 후 죽었는데, 그 죽은 후의 모습마저 웃고 있는 듯해서 참 고마웠다. 예쁜 햄스터였다.
홀로 남은 미서와는 자주 놀았다. 나이 든 중년의 아저씨가 햄스터와 놀았던 것이다. 이 녀석도 힘든 여름을 넘기면서 기력이 많이 쇠했다. 눈도 거의 뜨지 못하고 케이지를 제대로 걸어 나오지도 못했다. 밖에 내어 놓으면 힘이 없어서인지 근육이 덜덜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살아 있는 동안 해 줄 것은 해 주어야지 싶어, 일일이 해바라기 씨 껍질을 까서 입에 넣어서 먹이곤 했다. 평소 진맥 때문에 손톱이 짧은 나를 대신해 알약을 쪼개는 데는 경지에 오른 아내가 이 녀석 밥을 자주 마련해 주었다.
그런 것 때문이었을까? 떠나기 전날 밤에는 쳇바퀴도 돌리는 등 제법 힘을 낸다. 문득 회광반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기에 볼 수 없으나 죽음에 임박해서 사람의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의 몸과 주변을 깨끗이 정리를 하고 얼마 후에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이를 일컫는 말이 회광반조(回光反照)이다.
그 녀석이 기특해서 케이지 밖으로 내어 놓았더니 내 다리 옆에 와서 웅크리고 가만히 있는다. 많이 쓰다듬어 주었다. 어쩌면 그동안 함께 있어 주던 존재에 대한 자기만의 인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미물에게 인사를 받았으니 그래도 덕을 베풀었나 보다. 그리고 이 녀석도 가면서 예를 보인다.
털도 듬성듬성하고 살도 쏙 빠져 마치 솜뭉치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참 연약한 생명이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이번 생에 적어도 한 가족에게는 많은 공덕을 쌓았으니 다음 생에 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바쁘시겠지만 정말 조그마한 생명을 하나 받아달라고 기도드렸다.
* 고양이 대니가 오기 전 같이 살았던 햄스터와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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