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 프란스 드 발 / 장대익, 황상익 / 바다출판사
과학적 방법이란 것이 이렇다.
어떤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여러 자료를 검토한 끝에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선택한다. 가설을 세운 것이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현상을 일으킬 때 방해가 될 만한 모든 요소들은 동일하게 한 다음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조금씩 변화시켜서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한다.
만약 올바른 원인이었다면 원인과 결과 간에 적절한 관계가 생기고 함수로서 표현이 가능하다.
수식으로 정리가 되면 앞으로 어떤 원인이 얼마만큼 변화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조절할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인과관계를 얻기 위해 중요한 것이 실험의 통제다. 다른 조건은 모두 동일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통제가 가능한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은 과학이라는 단어를 덧붙이지만 심리학의 특정 영역을 제외하고 통제된 실험을 하기가 어렵다.
대신에 복잡성이 덜한 사회를 찾아 관찰하는 방법을 쓴다. 원시부족 사회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사회의 구성 원리, 기능과 역기능, 사회적 활동에 관한 기초적인 원칙을 알 수 있다. 인류학이 사회과학에서 큰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좀 더 단순한 모델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영장류의 무리다.
원시사회를 관찰하는 방법과 동시에 인류의 가장가까운 친척을 관찰하며 인간 사회와 인간 행동의 근원에 관한 더 깊은 이해를 얻는다.
진화의 과정을 따라 올라가면 필연적으로 인류가 영장류와 합류하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인류와 영장류의 유사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 더 단순한 영장류 무리의 관찰을 통해 인간 사회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학문적 방법론이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았다.
원숭이와 인간을 동일 반열에 놓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길을 간 사람들이 생긴다.
구달은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의 연장에서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껏 알고 있던 지식을 깨버린다. 인류와 침팬지를 가르던 본질적 차이는 그리 크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구분하는 본질이라던 언어, 도구, 문화 등 모든 것을 원초적 차원에서 침팬지도 공유한다는 것을 밝힌다.
구달이 자연 상태에서 침팬지 무리를 오랜 시간 관찰했다면 동물원이라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침팬지 무리를 오랜 시간 관찰한 연구가 있다. 그 연구 결과의 하나가 이 책 ‘침팬지 폴리틱스’이다.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나오는 자연과학에 관한 책은 몇 년만 지나면 버려질 운명이다. 이 책은 1982년 출간되었다. 너무나도 옛날 책이다.
현시점에서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이 사실 신선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여전히 가질 수 있게 만든다.
수컷 침팬지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에게서 보이는 수컷의 지배적 행동의 근원은 자기 유전자의 전달이다. 침팬지 역시 이러한 대원칙에 지배받는다. 최상위 수컷이 되어 암컷과 더 많은 교미를 하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 한다.
하지만 최상위 수컷이 되는 방법이 꽤 다르다.
사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은 가장 강한 개체가 우두머리가 된다. 그렇다면 침팬지의 수컷 중 가장 힘이 센 수컷이 최상위 수컷이 되는가? 인간 세계에서는 분명히 아니다. 침팬지 세계에서도 가장 강한 수컷이 최상위 수컷이 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정치에 있다.
가장 강한 수컷이 아닐지라도 두 마리가 연합하여 가장 강한 수컷을 이길 수 있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한다. 세 마리의 수컷은 권력자와 도전자, 조정자의 역할을 각각 맡으면 끊임없이 이합집산하며 관계 구도가 바뀐다. 제삼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보상이 주어지며 감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연합, 투쟁, 화해, 보상, 질투 등 인간의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닌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 살아가는 내내 발생한다.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은 수컷의 권력이 암컷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수컷 내부의 합종연횡적 정치술 이외에 수컷 외부의 암컷 집단과의 유대가 권력을 유지시켜 준다.
비록 완력에서 뒤처지더라도 암컷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음이 관찰된다.
그래서 최상위 수컷은 집단의 우두머리로서 암컷들의 호의를 얻어야 한다. 소집단으로서의 암컷 무리들과 여러 암컷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우두머리로서의 수컷이 보이는 행동은 공정이다.
대부분의 암컷이 친소관계에 따라 공격의 빈도가 차이가 나는 것에 반해 유일하게 우두머리 수컷만은 가깝고 멀고를 떠나 약자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
그리하여 보호자로서 권위를 인정받는다.
또한 분배자로서의 역할도 맡는다.
이런 모습은 원시 사회에서 지도자가 보이는 포트래취와 대인(大人)의 이유가 단지 사회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좀 더 근원적으로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오래된 자연과학 서적이지만 이 책은 인간의 올바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프란스 드 발은 영장류 학자이다. 그가 영장류를 관찰하여 파악한 것은 인간과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 내재한 본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올바르게 발현하여야 할지 다시 고민하게 한다.
또한 생태계의 일부분으로서 인간의 위치를 자각하고 겸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 했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정치적 행위를 발달시켰고 그리하여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정치가 있었다. 정치가 먼저였고 정치를 펼치는 자질이 인간에게 전달되어 그것이 더욱 발현된 것이다.
자연과학 서적이 아니라 인문학적 서적으로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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