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미야베 미유키 / 이규원 / 청어람미디어
1996년 도쿄.
초고층 아파트에서 4인 가족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가족 중 아들로 추정되는 사람은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부부와 노모는 칼에 찔려 살해당한다.
조사 과정에서 이들은 정상적인 거주자가 아니라 버티기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버티기꾼이란 경매로 집을 낙찰받은 사람이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이들이 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고급 아파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이면을 심층취재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는 여러 사람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은 이 사건에 얽히게 되는 이유를 각자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얽힐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알 수 없는 힘도 어렴풋이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자살의 개인적인 면과 자살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19세기만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했다. 지극히 개인적 행위로 파악했다. 에밀 뒤르켐이 자살은 순전히 개인적 행위가 아니란 것을 밝힌 이후에 사회 구조적 원인이 있음을 파악하게 되었다.
살인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면 불가능해 보이는 살인이 일어난 트릭의 해결이나 살인사건에서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탐정소설은 대부분 이런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이면을 파헤쳐 왜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는지, 사람들을 그런 방향으로 몰아붙인 사회적 힘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필 수도 있다. 살인을 단순하게 개인과 개인 간에 발생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그 너머 존재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 중 이런 관점에서 쓴 소설들이 있다. 이른바 사회파 소설이다.
마츠모토 세이초 이후 하나의 장르로 성립하는데 이 책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파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 ‘이유’는 잘 쓴 사회파 소설이다.
버티기꾼이란 것이 밝혀진 일가족 4명은 가족이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이들은 밖에서 보기에 가족 같았고 안에서도 가족처럼 살았다. 경매로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던 집과 관련한 파편화된 가족의 일상과 대비하여 가족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받는다.
가족이 아님이 확인되면서 파편화된 4인이 유사가족을 형성하게 되는 개인사가 그려진다. 가족 아닌 가족이 형성되어 버티기꾼이 되는 각 개인의 이유가 주변 사람의 인터뷰 형식으로 펼쳐진다.
또 와해되는 가족의 과정도 드러난다. 초고층 고가 아파트에 살던 한 가족이 그 아파트를 잃게 되고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한 유혹에 굴복하다 결국 가족이 없어져 버리고 마는 이유를 알게 된다.
경매라는 합법적 과정의 빈틈을 노려 부당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과 그런 욕망에 희생되는 개인,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대안 없이 선택을 강요당하다 맞이하는 파멸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놀라운 살인사건의 배후에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이 그러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사회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의 도쿄.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전 세계를 사들일 것 같던 일본의 경제의 거품이 터지던 시기였다.
거품으로 커져버린 욕망이 당연한 사회에서 환상을 쫒다 빚으로 얼룩진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크다.
초고층 아파트 살인사건으로 표출된 일본 사회의 잠재된 어두운 모습이 영향을 개인이 어떻게 받는지 씁쓸하게 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일본을 따라가는 경향이 컸다.
지금은 아무리 봐도 일본 사회와 우리는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당장 부동산 버블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은 타워팰리스가 미분양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지금도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부동산이 문제라 말하지만 버블이 터질 거라는 경고가 무색하게 수십 년 성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가 여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사회 분위기가 일본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이 확연하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개인이 중심이 되는 서구식 사고로 발걸음의 방향을 튼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미 굳어진 사회에서 변화가 아니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개인의 고통은 당연히 참아야 하는 것이지 사회적 문제일 수 있다는 자각이 없다. 변화의 방향이라고 해야 고작 욕망의 분출이라는 형태로 드러날 뿐이다.
어쩌면 작가 역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며 그 일상과 사고가 바뀌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기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사뭇 닮았다. 그러나 지금은 구시대적 낡은 관습과 시대착오적 태도로만 보인다.
오래전에는 ‘일본을 이기자’라는 말이 당연시되었다. 이 말에 이미 일본이 우리를 이기고 있거나, 최소한 일본을 의식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본이 우리 눈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많은 외국 중 하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같다.
문득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사고의 틀이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적이 많아 낡았다. 그러면서 15년 가까이 옆에 있었다. 가끔씩 다시 읽곤 했는데 이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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