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 / 무라카미 하루키 / 홍은주 / 문학동네
사람들은 살아온 오랜 시간 동안 매일매일 많은 사람을 만난다. 대부분은 일로 만난 사이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서로의 사생활을 드러내고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도 그렇다. 작가는 작품이라는 물건을 만들어 팔고 독자는 작품이라는 물건을 구매한다. 독자는 작품을 소비하면서 평가한다. 그 물건이 마음에 들면 동일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기회가 잦아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서서히 작가도 작품만큼 가까운 존재가 된다.
처음에는 한 끼 먹으러 간 식당이지만 자주 다니다 보면 사장님과 안면을 트게 되고 단골이 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과 같다.
작가와 독자도 그런 관계의 경로를 걷는다.
내게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그의 속내를 귀 기울여 듣는 작가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와 일로 만나는 것이지만 수필을 읽을 때는 편하게 친한 사람과 만나는 기분이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은 그의 수필집이다.
문학동네에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이후로 다섯 권의 수필집을 내었다. 한동안 뜸하더니 동일 판형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 1997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는데 무려 22년이나 지난 과거의 책이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 나이 들고 있는 선배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작가이고 나 역시 이미 이 시기와 그 나이 때를 지나온 사람이어서 무난하게 맥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눈다는 느낌으로 글을 만났다.
만약 하루키에 속아 책을 들었다면 아주 오래전 수필이라는 것을 확인하세요.
이 수필집은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그가 수필을 통해 밝히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글을 쓰는 모습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작가와 많이 다르다. 마치 직장인이 회사에서 일을 하듯 일정에 맞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글을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필을 통해 평소 생활 속 생각을 편하게 펼친다. 그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하루키의 수필은 문체가 무척 발랄하다. 소설에서는 본래 주류가 아닌 사람으로서 약간은 깔끔한 자폐적 느낌이 있는 사람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필은 같은 작가의 사고의 결과물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쾌하다. 재즈를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처럼 글의 리듬이 있다. 비록 번역된 글을 읽지만 세련된 깔끔함이 와 닿는다.
그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온갖 잡스러운 이야기들이 나온다. 잡스럽지만 하루키의 머리에서 걸러져 그의 언어로 표현되어 나오는 이야기들은 무척 밝고 상냥하며 친근해서 편하다.
책의 제목인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 관한 글이 세 개나 있다. 고양이의 장수 비밀이 아니고 장수하고 있는 특정 고양이에게서 발견한 비밀이 소개되어 있다. 참새에게 주문을 건다거나 사람 말로 잠꼬대를 한다거나 출산할 때 완벽한 공유의 체험이 그것이다. 21년 넘게 살아 사람으로 치면 백 살이 넘는다는데 고양이 장수의 비법이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비록 나를 찬밥 취급하는 고양이지만 집에 있는 녀석이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SNS는 물론이고 아직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여서 그런지 글이 주간지에 나가고 반응과 피드백이 더디다. ‘공중 부유회 통신’, ‘전라 집안일 주부 동호회’와 같은 글을 읽어보면 서로가 익숙한 옛날이야기를 옛날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은 동시 상영 영화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려나? ‘영화와 영화 사이 휴게 시간에 흐르는 어색한 무료함’, ‘도저히 명작이라고는 하지 못할 영화를 두 편 연달아 보고 뒷골목으로 나왔을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질척 질척한 권태감’ 어쩌면 이렇게도 젊었던 시절의 그 느낌을 표현해줄까!
다른 책에서 읽은 것 같기도 한 글들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아는 사람끼리 나누는 얘기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 얘기가 그 얘기다. 그러니 하루키가 했던 말 또 하더라도 별 대단할 것 없게 여긴다.
하루키 수필집은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있어 독서의 맛을 높인다. 그가 사망한 것도 이미 몇 년이 흘렀다. 그의 그림은 남아 함께 마치 내가 겪었던 일인 양 익숙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자료를 정리하다 삼성그룹 신입사원 연수에서 우리 팀원들이 내게 써 준 장점, 보완할 점 페이퍼를 발견했다. 수십 년 전으로 기억이 되돌아간다. 하지만 문득 그때 그 젊은이는 오늘의 나를 기대하지 못했으리라는 씁쓸함에 현실로 되돌아온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안자이 미즈마루도 젊어서 좋았던 시절을 안겨준 작가다. 그래서 항상 친근하고 가깝게 느낀다.
하루키의 수필에 대한 독후감이어서 그런지 독후감에도 내 일상이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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