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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독후감

by Mr. Goodman 20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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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 김연수 / 문학동네

 

영화나 드라마의 기초는 각본이다. 이야기다. 말이 아니라 영상으로 전달하는 도구가 달라졌을 뿐 전달하는 것은 이야기이다.

영화는 영상을 통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인간의 뇌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데 가장 많은 영역을 할애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의 현실감을 더 크게 느낀다.

 

영상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한 장의 사진도 많은 울림을 준다. 정지된 화면이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의 전개를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사진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시선을 잡는 사진이 잘 찍은 사진이고 포토그래퍼의 역량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야기를 더 많이 더 깊게 즐기는 방법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이다. 영상보다 짧은 시간 동안 훨씬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화자의 생각까지 알 수 있어 직접적으로 이야기에 빠질 수 있다.

 

사람의 이야기, 누구나 즐기는 다른 사람의 뒷담화가 글로 쓰이면 소설이 된다. 남의 이야기를 그 사람이 된 것인 양 들어볼 수도 있으나 가끔 시간의 흐름을 단절한 사진처럼 삶의 단편에 관한 이야기를 마주할 때도 있다.

사진이 포토그래퍼의 역량에 좌우되듯 삶의 단편은 단어와 문장으로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다. 단편 소설은 이야기 외에 문체의 미학이 드러난다.

 

대성당 표지
대성당, 문학동네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의 단편 소설가이다.

잘 찍은 사진처럼 삶의 한 단면을 글로 드러낸다. 단편이기에 많은 경우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카버는 그만의 단어 선택과 문장으로 그리고 미국의 체호프라고 평을 듣는 문체의 힘으로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다.

원문을 읽고 그 문장의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번역본만으로도 짧은 글을 읽은 후 나머지 여백을 채우게 된다.

 

영국의 평론가는 그의 문장에 대해 더러운 리얼리즘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사실을 불편할 정도로 리얼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이렇게 명명되었다. 그러하다. 레이먼드 카버의 글들은 하나 같이 알 수 없는 거북함과 불편함을 전한다.

그런 불편함은 독자들도 느꼈던 것이기에 사실로 다가와 공감하게 된다. 다만 이 불편함이 부부 사이에 발생한다는 것에서 마치 감췄던 속내가 드러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동시에 나는 그렇지 않다며 자기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거부감도 느낀다. 모순적 감정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묘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대성당은 레이먼드 카버가 작가로서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의 단편집이다. 모두 12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개별적 작품이기에 각각 하나로서 완결되었다 생각했으나 책을 번역한 김연수의 해설을 보면 유기적으로 작품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귀지로 귀가 막혔거나 베트남 전쟁의 기념품으로 잘린 귀가 보여주는 듣지 못하는 단절, 단절을 마감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마침표와 시작점으로 이루어진 구성이다. 듣지 못하고 그래서 자기의 말도 전해지지 않는 관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극적인 글이 이 책의 제목이자 마지막에 있는 소설인 대성당이다.

 

아내의 친구라며 맹인이 방문한다. 낯선 이의 방문이 어색하다. 더군다나 아내의 친절과 호의는 질투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의 벽을 쌓게 한다. 그러다 늦은 밤 TV에서 방영되는 대성당 소개 프로그램을 보며 오히려 맹인으로부터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눈을 감고 손을 잡고 그림 그리기를 통한 교감.

 

귀가 막혀 듣지 못하던 세상에서 눈이 없어도 볼 수 있는 관계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을 묘사한 짧은 문장들이 감동적이다.

공감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일어섬을 그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상징적으로 언급된다. 마지막에 적대감을 일으켰던 빵집 주인이 만든 롤빵을 먹는 장면에서 갈등과 적대감, 상실이 사라지고 새로 일어서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빛으로 잘 만든 사진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후 맥락을 채우듯 카버의 단편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여백 상황을 독자가 채울 수 있다. 장편보다 단편이 단편보다 시에서 발휘하는 정제된 말의 힘이다. 카버의 글을 읽음으로써 말 그 자체의 힘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일상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표층 의식 아래 사실들을 다시 느낄 수도 있다.

 

미국 문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나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의 소개로 레이먼드 카버를 읽게 되었다. 롤빵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키의 단편이 이 사람의 영향을 꽤 받지 않았나 싶었다. 느닷없는 분위기와 기승전결 없는 단면 묘사가 그렇다. 문득 '빵가게 재습격', 그 전 작품인 '빵가게 습격'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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