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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13계단 독후감

by Mr. Goodman 2021.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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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다카노 가즈아키 / 전새롬 / 황금가지

 

이 소설의 제목에 쓰인 숫자 13은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결재 과정의 단계를 의미한다. 또한 교수대까지 이르는 계단의 숫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통용되는 불길한 숫자로서 13도 연상된다.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없으나 책을 다 읽은 후에 작가가 독자에게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단 것을 알게 된다. 제목의 상징성이 크다. 잘 지은 소설일뿐더러 제목마저도 뛰어나다.

 

13계단 이북 표지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기 위해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인류는 집단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사회를 만들어 생존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했다. 개체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남아있기 위해 단독 생활을 할 때 누렸던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한다.

 

만약 집단의 구성원이 단독 생활을 하듯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 고집하면 최종적으로 단독 생활의 이익과 집단생활의 이익을 비교해야 할 때가 온다. 집단을 떠날 선택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개인이 집단을 떠날 선택을 할 수 없다. 언제나 집단으로부터 추방을 당할 뿐이다.

사회라는 공동체는 공동체의 존속을 방해하는 개체에 대해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님을 선포하며 공동체가 제공하는 보호를 걷는다. 사형이다.

 

집단 내 개인과 개인 간에는 갈등이 있다.

폭력의 형태로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피해자는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있어야 할까? 만약 이것이 용납된다면 집단이 존속할 수 없다. 약한 개체는 차라리 단독 생활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러니 공동체 차원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받고 있도록 방치할 수 없다. 법의 등장이다.

 

가해자에 대해 적어도 피해 정도에 버금가는 형벌을 가하는 것이 합당하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나오는 형벌의 원칙이다. 감정적으로 눈에는 눈이라는 논리에 수긍하게 된다. 논리를 떠나 강력한 감정적 동의를 수반하는 이 원칙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회구성체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는다.

 

내가 맞은 만큼 내가 때려야 적어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청산된다. 아니, 피해자의 일상이 파괴되었으니 그만큼 더하여 징벌을 가할 때에야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약한 피해자가 어떻게 강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 어렵다. 그래서 공권력이 대신한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가 가해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어떤 보상을 주는 것일까?

 

사적 복수를 없애고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여 공동체 유지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아닌 제3자가 과연 정의를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겪은 고통에 합당한 형벌을 가할 수 있을까?

형벌의 대상이 될 가해자가 진정 가해자인 것은 확실한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닌 사람이 가하는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은 과연 정당한가?

공권력이 행하는 형벌의 목적은 무엇인가? 원시적 감정의 형태인 복수를 대신하는 것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교화인가? 교화와 징벌의 두 가지 상충하는 가치는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교화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만약 사형수가 아닌 사람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그런 부당함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국가의 형벌권은 과연 정당한가? 피해자의 고통에 맞지 않는 형벌의 가벼움은 정의로운가?

만약 공권력이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다면 피해자가 대신하여 정의를 구현할 수는 없는 것인가?

 

13계단은 살인을 저질렀으나 가석방을 받은 준이치가 사형수의 무죄를 증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두 개의 살인사건이 만나는 배경에 또 다른 살인이 기다린다. 잘 짜인 구성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정의가 달리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의에 대해, 정의의 실현에 대해 사건의 해결 과정을 따라가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은 신인작가였던 다카노 가즈아키에게 에도가와 란포상을 만장일치로 안겨주었던 작품이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추리소설로서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치밀하게 전개된다.

거기다 그 과정에서 숨어있는 많은 사람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더 큰 주제가 추리라는 즐거움과 별도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읽었던 글이다. 이번에 이북으로 나온 것을 보고 구입하여 읽었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 신뢰가 있는 것 같다. 보통 사람의 선함과 연대를 중시하는 모습이 그의 글에 나타난다. 오랜만에 그의 첫 글을 다시 읽는 것이 즐거웠다.

예전에는 일본 작가의 글을 자주 읽었는데 이유를 모르겠으나 요즘은 거의 안 읽는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진 작가의 글은 오래전 출간된 글이어도 거부감이 없다.

 

잘못된 사형 판결을 내리고 괴로워하다 불문에 귀의했던 효봉 스님의 일화도 떠오른다. 

가벼운 읽을거리지만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책이다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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