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돌리노 / 움베로토 에코 / 이현영 / 열린책들
로마와 그리스는 대략 2,000년 안팎의 옛날 나라들인데도 꽤 낯익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가까운 1,000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면 막막하다. 중세는 그만큼 멀다.
서양의 중세에 대해 해박하다고 정평이 난 에코가 3차, 4차 십자군 전쟁이 있었던 12세기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 바우돌리노다.
이 소설의 구조는 영화 포리스트 검프와 동일하다. 가상의 인물인 포리스트 검프가 역사적인 여러 사건들에 연관되어 있듯이 바우돌리노가 12세기 유럽사에 보이지 않는 굵직한 역할을 한다.
포리스트 검프는 영화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창조된 인물이다. 관객은 순수한 사람인 포리스트 검프의 이야기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수시로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과의 연관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 소설에서 독자는 검프와 마찬가지로 가상의 존재인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너무 뻔한 거짓말을 본다. 에코는 소설 여기저기에서 바우돌리노가 거짓말을 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래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우돌리노에 몰입하기보다 이 인간의 세 치 혀가 전하는 상상과 바우돌리노가 살던 상황을 관찰할 수 있다.
포리스트 검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역사적 사건이었듯이 바우돌리노에서 일어나는 일들 역시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건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다.
바우돌리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실존 인물인 니케타스이다. 동로마제국 역사에서 학자로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인가 보다. 이런 역사가를 등장시켜 바우돌리노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하는 에코의 재치를 만나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바우돌리노와 니케타스의 대화 때 음식이 나온다. 이 부분은 사실일 것이기에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 재료의 다양함과 맛의 풍성함이 놀랍다. 중세, 특히 풍요로웠던 동로마제국의 귀족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을지 알 수 있다. 먹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역사로만 남은 때와 지금의 내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
중세시대는 교황이 세속적 권력도 갖고 지배하던 시대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군사력을 가진 왕이 고분고분 그 말을 들었을까? 세계사 배울 때 ‘카놋사의 굴욕’이라는 한 줄도 안 되는 분량으로 암기해야 할 내용에 불과했던 이 사건도 그 전후를 보면 황제가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던 황제가 교황의 권위까지 갖기 위한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 바우돌리노를 양자로 삼은 황제 프리드리히를 관찰한 바우돌리노를 통해 중세의 정치사를 이해할 수 있다.
대학 생활이나 도시의 발달과 같은 역사책에서 외워야 했던 내용도 바우돌리노의 경험을 통해 생생히 느낀다. 소설을 읽으며 얻는 의외의 덤이다.
중세는 크리스트교가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사람이 갖는 상상도 그 틀에서 출발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주요 인물로 나오는 살라딘에게 뺏긴 예루살렘을 다시 탈환하기 위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들은 동방에 있다는 기독교 왕국에 희망을 건다. 요한 사제가 다스리는 기독교 왕국은 이 당시 사람들에게 이상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상향을 향한 여행과 여행에서 만나는 숱한 괴물은 너무 중세스럽다.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는 괴물들은 중세의 기록에 근거하여 에코가 바우돌리노의 입을 통해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 냈다. 모든 신화와 이런 경로를 통해 당시에는 사실처럼 굳어져 회자되었으리라.
수시로 종교회의에서 다뤘을 법한 여러 종파의 논쟁이 등장한다.
요한 사제의 왕국에서는 괴물들이 각 종파를 대표하여 차이나는 점을 주장한다. 상상과 중세를 지배했던 크리스트교의 여러 분파간 차이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만 지식이 부족하여 이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서양의 중세라는 시공간이 워낙 낯선 곳이어서 생생하게 그려내는 중세 사람들이 가졌을 상상을 같이 호흡하고 즐기기가 어렵다. 아는 것이 있어야 맞장구를 칠 터인데 대부분이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에코는 단순한 모험담으로 끝내지 않고 현실로 돌아와 바우돌리노의 입담에 빠져 생각하지도 못했던 황제 프리드리히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미스터리 소설처럼 갑자기 흐름이 빨라지고 결말에 이른다.
바우돌리노의 존재, 그의 증언은 진실이 아니다. 그가 증언했던 크리스트교의 성물 더 나아가 믿음의 토대도 얼마나 허약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이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얼마나 오랜 시간 진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허구로 만들어진 것들이 믿음으로 진실과 삶의 가치가 된다.
인간의 뇌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사실을 재구성할 뿐이다. 역사와 야사의 구분도 역사가의 판단에 따라 임의로 나눠진 것이다. 니케타스는 바우돌리노의 얘기를 역사의 어느 부분에 넣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빼기로 한다. 근거의 부족이 이유다. 대신 이 멋진 이야기는 살아남으면 좋겠다는, 살아남으리라는 희망을 말하며 글을 마친다. 바우돌리노만큼이나 거짓말쟁이가 얘기해 줄 거라면서. 에코는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중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워낙 없기에 이 책이 전하는 충분한 재미를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한껏 허구의 상상 속으로 함께 여행하는 것이 즐겁다.
역자가 이탈리아어 전공이다. 여러 번역의 다리를 거치지 않고 한 다리만 건너 만날 수 있으니 오류가 조금은 덜한 에코를 만났을 것이다. 우리 사회나 문화가 넓고 깊어진 것을 만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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