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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64 독후감

by Mr. Goodman 2021.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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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요코야마 히데오 / 최고은

 

일본소설로는 드물게 이북으로 출간된 64

 

책 제목 64는 육십사가 아니고 육사다.

1989년이 일본 연호로 쇼와 64년이자 동시에 헤이세이 1년이다. 왕의 교체와 맞물려 변화에 대한 어수선함이 일본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이 해 어린아이의 유괴사건이 발생하나 미결 사건으로 남아 64로 불린다.

64는 구시대와 신시대의 경계에서 아직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상징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로 소개되어 있으나 추리소설이라 하기엔 애매하다. 오히려 조직사회에서 권력을 향한 정치적 암투를 그린 소설이라 하겠다. 소설에서는 일본 경찰 조직 내부의 권력투쟁을 다룬다. 그 축의 하나는 형사부와 경무부와의 갈등이고 또 다른 축은 독자에게 익숙한 경시청 즉 국가경찰과 지방경찰 간의 알력이다.

여기에 대립 구도가 하나 더 추가된다. 경찰과 언론이다.

경찰 안과 밖 이중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복합적 권력투쟁이 주요 내용이다.

 

여러 측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권력투쟁의 경계에 주인공이 자리 잡고 있다. 해결되지 못한 유괴 살인이라는 경계로서의 64는 경찰조직 내부 권력투쟁의 경계, 경찰조직 외부의 권력투쟁의 경계로서 상징성을 갖는다. 이 상징은 주인공 미카미의 경계인으로서 맞는 갈등으로 구체화한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경찰 이야기가 나올 때 이야기의 중심은 형사가 된다. 사건 사고를 풀어가며 정의를 구현하는 경찰 역할을 하는 사람이 형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틱하지 않을 뿐 경찰의 역할은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사회 질서가 유지되어 일상이 가능한 것은 경찰이 지켜주기 때문이다. 모든 조직은 조직이 잘 굴러가게 관리하는 내부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경무부가 담당한다.

 

주인공 미카미는 뼛속부터 형사인 사람이다. 그러다 경무부 산하 홍보부로 발령을 받는다. 자리와 아이덴티티가 어긋남을 느낀다. 권력 남용에 대한 감시와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언론과 수사 과정에서 정보를 통제하고자 하는 경찰의 필요성이 맞부딪치는 경계에서 조율을 해야 한다.

경무부로 발령을 받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겉도는 상황에서 브리핑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로 인해 언론으로부터 집요한 공격을 받는다.

 

언론의 신뢰를 잃은 홍보 담당자로서 상관의 지시와 언론의 요구가 상충하여 조정에 큰 애로를 겪는다.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잊혔던 사건인 64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64는 사건 자체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 형사부와 경무부의 자리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미카미는 전직 형사로서 형사부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오해를 현직 경무부로부터도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는다.

 

64를 매개로 도쿄의 중앙경찰의 지배력 강화라는 구도가 드러나고 자기의 업무가 자신의 모태인 형사부에 칼을 겨누는 것임이 차츰 드러난다. 권력투쟁의 목표가 드러나고 이 과정에서 장기판의 소모품일 뿐인 조직 속 개인의 자각이 나타난다. 그러다 갑자기 64가 사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며 절정으로 향한다. 막바지에 이르러 추리소설로 급박하게 전개가 바뀐다.

 

갈등을 일으키던 일들이 거의 대부분 해결된다. 하지만 마무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책을 덮는다. 왜일까? 구조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선 사건 64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해결 과정이 긴박하지만 실마리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해 처벌이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오직 짧은 순간 범인이 받는 고통이 전부일뿐이다. 사건 64를 풀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작가는 친절하지 않다.

 

경찰 내부의 갈등 역시 연기되었을 뿐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가는 주인공이 집단의 경계에 서 있는 까닭에 겪게 되는 일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묵직하게 펼친다. 다만 독자가 보기에 그 일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높은 분의 의전이 최우선이 되고 업무가 아니라 업무는 어찌 되건 그 업무에 관여할 권한을 놓고 목숨 걸고 싸우는 모습이 후진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작가는 흔드리지 않고 글을 이어간다. 억누르는 갈등 구조의 변화가 없다. 그리고 구체적 사건은 유예될 뿐이다.

 

집단이기주의, 조직 보호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당연한 듯 펼쳐지며 개인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인으로서의 역할로 의미가 부여된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관점은 변하지 않는다. 경찰 내부 조직 간, 언론사라는 집단과의 관계 역시 이번 사건의 해결은 되었지만 발전적 관계 형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홍보부로서 자각하며 경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 해소되었다는 감동이 없다.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들었던 조직과 개인 간의 관계 시스템이 지금 한국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낡고 후진적으로 보인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 전편에 드러나는 심한 관료주의, 계급성, 성차별은 작가가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는 내용은 아니다. 공기처럼 당연히 받아들이는 일본 사회의 틀이었다.

 

10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지만 일본의 분위기는 10년 동안 변화가 없었나 보다.

독서란 주인공의 관점에서 따라가다 내 생각을 덧붙이며 교류하는 과정이기에 묵묵히 이어가는 이야기의 힘이 작가의 의도대로 답답함을 만들지만 작가가 의도한 것 같지 않은 일본 사회의 정체성이 답답함을 더한다.

일본이 이제 섬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시기에 접어들었나 보다.

 

사소하지만 누구나 겪는 일을 묵직하게 끌고 가는 작가의 힘은 대단하다. 그러나 구태여 찾아 읽고 고구마 10개 먹은 느낌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64 종이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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