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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세상의 생일 독후감

by Mr. Goodman 2020.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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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생일 / 어슐러 K. 르 귄 / 최용준

 

SF소설가로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 르 귄이다.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조된 세계는 머릿속에 이미지로 만들어지면서 읽는 즐거움을 한껏 끌어올린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성찰하게 한다는 것이다.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것은 그의 사색적인 문체의 힘이다. 탁월한 문체, 문제의식이 드러난 주제,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워진 구성 등 그의 작품은 탁월하다.

르 귄의 작품은 고요히 머무르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많은 SF소설이 그렇듯이 르 귄의 소설도 지구가 아닌 낯선 행성, 우리와 다른 세계가 배경이다. 작가가 이름 붙이지 않았지만 헤인 우주라 일컫는다.

은하를 넘어서는 거대한 헤인 우주 속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 환경에서 삶을 영위한다. 자연환경, 문화, 관습, 제도, 몸까지 다르기에 그들의 삶은 낯설지만 모두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모습임을 이해할 수 있다.

겉으로는 우리와 다른 모습이지만 속에 흐르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보편적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내 삶에 비출 수 있다.

 

이 작가의 글은 모두 사고실험의 구체화라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SF작가의 글과는 달리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인류학적 사고실험이다. 다른 사회에서 다른 모습의 문화 속에서 관습과 제도,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을 되새겨 보게 된다.

 

세상의 생일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이 책에는 8개의 소설이 있다. 작가는 이런 구성을 단편 모음곡이라 부르고자 하는데 바흐의 첼로 모음곡이 마구잡이로 짧은 곡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듯 단편집이라 하더라도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 모여서 큰 의미의 전달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그림을 그리며 여기 작품들로 단편 모음곡을 만들었을까?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는 다양한 성(sex)의 모습을,

세그리의 사정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 특히 생식과 관련하여 암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후쿠오카 신이치의 모자란 남자들에 수컷은 자연에서 필요 없을 수도 있으나 좀 더 나은 세대의 번식을 위해 암컷이 용납했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수컷에 의존하다 보니 권력관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이 말이 오버랩된다.

 

선택하지 않은 사랑산의 방식은 결혼제도의 다양성을 다룬다.

고독에서는 느슨한 연대의 사회를 다루는데 작가의 말에서 자기처럼 내성적인 사람이 더 주목받는 세상은 어떠할까 다루었다 한다. 하루키도 그렇고, 김훈도 그렇고 작가는 좀 비사교적인 것 같다

옛음악과 여자 노예들은 노예해방에서 소외된 노예의 이야기다. 미국 남부의 퇴락한 장원과 대저택이 그려진다. 미국 남북전쟁 중 북부로 도망치지 못하고 계속 남부에 남아있었던 노예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남은 자들의 슬픔이라고나 할까?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 다른 이야기에도 자주 언급되는 웨럴 행성이라서 반갑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상의 생일은 잉카 제국의 몰락을 떠올리게 한다. 제국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는 오는데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 알 수 없는 정체성의 위기를 느낀다.

 

마지막 작품 잃어버린 천국들은 하인라인의 유니버스와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다. 선택된 사람들이 정착할 다른 행성까지 여행을 한다. 그런데 이 여행은 수세대가 걸린다. 우주선에서 태어나고 죽은 뒷세대에게는 우주선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지구라는 우주선에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르 귄의 책은 읽는 순간에는 차분해지고 읽은 후에는 짙은 여운을 남긴다. 노벨상을 타고 돌아가셨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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