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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제5도살장 독후감

by Mr. Goodman 2020.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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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5도살장 / 커트 보니것 / 정영목 / 문학동네

 

커트 보니것은 반전을 주장하는 작가다.

그의 반전주의는 자기가 직접 겪었던 드레스덴 폭격의 참혹함으로 인해 문자적 차원을 넘어서는 설득력을 가진다.

 

1945년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후 24년이 지난 1969년에야 이 소설을 완성한다.

자연운명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처음 시작한 일은 24년의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된 형태를 맺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작가 개인적 측면에서도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승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24년 동안 끝없이 되새겨야 했던 전쟁의 경험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참혹한 것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책은 수필처럼 작가가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소설과 사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장이 바뀌어 사실의 경계를 살짝 넘어가면서 앞서 소개되었던 주인공인 빌리 필그림이 나온다.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빌리는 과거의 자기라 할 수 있다.

 

드레스덴 폭격을 겪고 살아남은 빌리의 눈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빌리는 특이한 재주가 있다. 바로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우주인으로부터 부여받은 빌리는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을 수 있고 이로 인해 현재 일어나는 일들의 무의미함을 안다. 또한 현재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안다. 빌리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터무니없는 일인지 공감하게 된다. 소리 높여 반전을 주장하지 않아도 전쟁이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강하게 수긍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비틀어버린다. 아들이 월남전 참전 용사가 되는 것을 통해서.

 

내용 자체가 터무니없다. 우주인에게 잡혀간 사람,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 그것들로 삶과 세상의 배후에 담긴 의미와 무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이러한 구조가 현재 강요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한낱 우스갯거리로 만든다. 서구 사회의 합리성 서사를 붕괴시킨다.

 

이 소설은 드레스덴 폭격마저도 삽화로 치부한다. 엄청난 살육이 끝난 후 보통이라면 주인공 역할을 맡을 강인한 미국인이 찻잔을 훔친 죄로 사형을 당한다. 희화된 삶의 아이러니다. 거창한 실존주의의 철학 이론을 언급하지 않아도 실존주의를 가장 잘 들어내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읽을 만한 소설이다. 냉소, 유머, 슬픔, 아이러니를 비롯하여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되씹어볼 기회를 주는 글이다.

타임이 20세기 100대 영문소설로 뽑은 이유를 읽는 즉시 알게 된다.

 

늘 그렇듯 정영목씨의 번역은 참 매끄럽다. 커트 보니것의 문체를 잘 살렸으리라 생각한다. 읽는 즐거움이 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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