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젤 / 아이작 아시모프 / 최용준 / 열린책들
책은 디자인과 장정이 내용과 어울려 자기만의 표정을 갖는다. 아자젤은 다 읽은 후에 다시 보면 참 귀엽다. 사랑스러운 책이다.
아자젤은 유대교의 타락천사 중 하나로 인간에게 문명을 전하기 위해 지상으로 왔다가 인간 여인과 결혼해 신의 분노를 사 하늘에서 쫓겨났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자젤에게서 유대교 타락천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2cm의 자그마한 악마인데 소설에서 수시로 폄하당하는 작가 아시모프처럼 아자젤도 하는 짓을 보면 조롱당할만하다. 이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
시트콤처럼 매회 내용이 달라지는 단편 모음집이다. 고정적으로 나오는 등장인물이 세 명 있는데 화자인 조지, 조지와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 누가 봐도 아시모프인 작가, 그리고 아자젤이다.
조지와 작가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카페에서 만나는데 항상 작가가 술값, 밥값을 낸다. 조지는 되려 팁을 야박하게 준다며 타박까지 한다. 그러고선 거스름돈은 당연히 자기가 갖는다. 당당하다.
당당한 조지는 작가의 인색함을 꾸짖으며 작가와 구별되는 고귀한 품격의 자신과 거기에 어울리는 동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단, 이 동료들은 항상 문제를 갖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지는 아자젤의 도움을 청한다.
조지는 고매한 인격에 걸맞는 신사도를 발휘하여 도움을 주려했다 하지만 속에는 뭔가 이익이 있다. 대부분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어떻게 연결해보려하거나 아니면 해결의 대가로 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욕심을 보인다.
문제의 해결사는 아자젤이다.
조지는 만날 때마다 아자젤에 대해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말했건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아자젤에 대해 말한다. 조지 자기만이 조상이 발견한 주문으로 아자젤을 불러낼 수 있는데 불려 나온 아자젤은 또 그 자체로 코믹하다.
도박 중에 큰돈을 막 따려는 순간, 또는 연애 과정에서 막 성공하려는 순간처럼 아주 중차대한 때에 불려 나온다는 것이다.
조지가 과대망상적 자기애를 보이듯이 아자젤 역시 그러하다.
조지가 보기에 아자젤이 사는 세상에서 볼품없을 것이 뻔 한 악마인 아자젤에게 달콤한 찬사를 몇 마디 함으로써 아자젤은 소원을 들어준다.
악마가 들어주는 소원이기에 마법과 같은 판타지이나 알고 보면 역시 과학에 기초한 문제 해결이다.
적당한 조건 하의 물 분자에 작용하는 반중력, 알코올의 화학식 변형, 신경전달 물질의 반응 속도 변화와 같은 원리 등에 기초하여 아자젤은 조지의 소원을 들어준다.
결과는 항상 만족스럽다. 마법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좋지 못하다. 과학은 상황과는 무관하게 조건이 성립하면 결과가 동일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조지는 소원을 들어주고 보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만 받게 된다.
재미있는 시트콤이 반복된다.
이 책의 소개 글을 보면 유머와 풍자가 가득하다고 하는데 무엇을 풍자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SF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의 밤', 로마제국쇠망사의 SF판이라는 평을 듣는 '파운데이션', 열역학법칙의 훌륭한 참고서라 할 '최후의 질문'과 같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과학 소설을 쓴 작가다.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였다고 외칠 때 듣게 되는 가장 흥분되는 구절은, '유레카!'가 아니라 '거 참 희한하군......'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의 소설은 단편이라도 읽고 난 후 뭔가 '쿵!' 하는 느낌을 갖는다.
단, 아자젤은 아니다. 그냥 자기 자랑하는 아시모프를 한껏 비웃는 아시모프가 쓴 글은 묘하게 쾌감을 전한다. 위스키 술잔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2cm 크기의 작은 악마이기에 거창한 과학도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완연한 실패도 낄낄거릴 에피소드가 된다.
요즘 명맥이 끊어진 시트콤을 본 기분이다. 귀여운 책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노의 포도 독후감 (0) | 2021.04.30 |
---|---|
미야베 미유키 이유 독후감 (0) | 2021.04.07 |
장수 고양이의 비밀 독후감 (0) | 2021.03.26 |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독후감 (0) | 2021.03.14 |
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 독후감 (0) | 2021.03.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