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간은 순수한 논리적 기호입니다.
오행은 경험의 세계를 변화라는 관점에서 구분하고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천간과 오행은 서로 교집합이 없는 카테고리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가 섞이고, 이로 인해 오류가 생깁니다.
- 목차 -
1. 천간은 십진법에서 쓰이는 단순한 숫자의 기호
2. 천간의 역할 : 순서와 위치
3. 천간은 구체화하지 않은 설계도
4. 일간은 사주의 기준
일간(日干)에 오행은 없다
1. 천간은 십진법에서 쓰이는 단순한 숫자의 기호
인류문명은 수를 통해 카운트가 가능하면서 발달합니다. 손가락이 10개이므로 10진법 체계는 인간이 직관적으로 경험하기에 가장 적절합니다.
동아시아 역시 십진수 체계를 발전시킵니다. 10진법 체계 아래에서 숫자를 가리키는 표현 중 하나가 천간입니다. 오늘날 일, 이, 삼 …… ……이라 숫자를 표시하지만 고대 중국의 상(商) 나라에서는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로 숫자를 표시하였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와 같이 서수(序數)의 의미가 큽니다만 천간의 기호는 십진법으로서 숫자의 역할을 합니다.
천간은 특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천간은 서수, 순서, 숫자에 불과합니다.
음양오행론이 꽃을 피우고 정리되던 한대(漢代)에 편찬한 한서(漢書)에는 천간 10글자를 出甲於甲, 奮軋於乙, 明火於丙, 大盛於丁, 豊茂於戊, 理紀於己, 斂更於庚, 悉新於辛, 懷壬於壬, 陳揆於癸라고 소개합니다. 어디에도 음양오행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순서일 뿐이지요.
2. 천간의 역할 : 순서와 위치
천간은 순서를 가리키므로 위치가 정해집니다. 위치가 결정되므로 천간을 바탕으로 다른 요소들과의 방향과 거리라는 공간적 관계가 형성됩니다.
무라는 천간이 기준이 되면 바로 앞에는 정이 있고 뒤에는 기가 있습니다.
임이라는 천간이 기준이 되면 바로 앞에는 신이고 바로 뒤는 계입니다.
천간, 특히 일간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다른 간지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입니다.
일간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주 해석의 두가지 중요한 틀의 하나인 십신(十神)이 결정됩니다.
여러 간지의 공간적 자리매김이라는 천간 고유의 의미를 넘어서면 오류가 생깁니다.
오행은 변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속성을 드러냅니다.
오행이라는 사유의 틀을 이용하여 현재 상태를 해석하고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오행은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간에 오행적 속성을 덧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오행은 지지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천간의 갑을(甲乙)도 목이고, 지지의 인묘(寅卯)도 목입니다. 해석이 중구난방이 되어버립니다. 천간도 지지도 오행으로 해석하는데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르다고 하지만 뭐가 다른지 밝히지 않습니다.
천간은 오행적 속성이 없습니다.
3. 천간은 구체화하지 않은 지도
천간을 음양오행으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기면 안 됩니다. 천간 특히 일간은 다른 글자들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는 고유의 DNA를 갖고 있습니다. 개체의 고유성도 있을뿐더러 종의 고유성도 있습니다. 다른 종의 DNA는 상이합니다.
요즘 분자생물학은 한 생명체의 DNA 코드 배열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쉽게 밝힙니다. 그런데 DNA 코드를 밝혔다 하여 어떤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을 알 수 있을까요? 모릅니다.
모든 생명은 DNA의 지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만 우리가 DNA 구성을 안다고 하여 생명체를 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은 악보에 그려집니다. 악보에 기초하여 음악은 나옵니다만 구체적으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악보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가수, 악기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음악이 탄생합니다.
동방박사는 별을 보고 아기 예수가 탄생한 곳을 찾아가 경배합니다. 별을 보고서 갈 수 있었지만 허름한 마구간까지 가는 동안 마주쳤던 풍경은 다양했습니다.
지도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도를 통하여 어떤 지역의 형태, 주변 환경, 고도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그 지역을 직접 방문하면 지도가 알려주는 내용은 그대로이나 실제 모습은 훨씬 풍부합니다.
천간, 특히 일간은 DNA, 악보, 하늘의 별, 지도와 비슷합니다. 실제로 경험하는 구체적 사건과는 무관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천간, 특히 일간을 기준으로 삼아 나름 의미를 갖습니다.
일간이 사주의 기준입니다. 일간을 중심으로 하여 나머지 사주 원국, 대운, 세운의 모든 간지는 나름의 위치를 갖습니다. 거기에 지지는 오행적 속성까지 더해져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만약 일간이 없다면 지지는 단순한 오행의 특징밖에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 오행으로 모든 사람의 특성을 구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특성을 1,036,800개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일간이 나머지 글자들의 위치를 정해주기 때문입니다.
4. 일간은 사주의 기준
일간은 사주의 구조를 이해하는 중심 기둥으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일간이 있기에 각 글자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이런 위치적 역할 이외에 오행적 속성을 추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갑은 첫 번째를 의미합니다. 숫자 놀음으로 10을 다섯개의 무리로 나누면 두 개씩 한 묶음 속에 들어갑니다. 한 묶음 속에 들어간 두 개를 구별하기 위해 음양으로 나눕니다. 두 개를 원소로 가진 다섯 개의 집합을 순서대로 나열할 수 있고 이러한 논리에 근거하여 오행의 일 번인 목이 됩니다.
목의 오행적 속성은 배제하고 오직 다른 간지와는 같은 자리에 있는가 앞선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뒤에 위치하는가의 구조적 관계도를 만듭니다.
일간이 기준을 잡지 못하면 나머지 간지는 구조, 패턴을 형성하지 못합니다. 일간은 존재만으로 사주를 결정짓습니다. 다만 그것이 현실에서 구체화하여 드러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시간의 흐름 즉 오행을 충실히 따르는 지지가 큰 역할을 합니다.
DNA가 단백질이라는 물질의 형태를 통하여 생명체의 모습과 기능으로 드러나는 것과 유사합니다. DNA가 본질이지만 우리는 DNA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간은 천간으로서 다루어야 합니다.
천간은 하늘의 별이므로 구태여 이를 사람이 살아가는 땅으로 끌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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