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란 태어난 때를 말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누구나 공평하게 살아온 시간만큼 나이를 먹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공평하게 운명의 스케줄을 맞습니다. 운명의 스케줄은 항상 일정합니다. 일 년이 사계절의 반복이듯 운명도 계절의 반복입니다. 운명의 흐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하며 순환합니다. 그래서 좋은 운만 있거나 나쁜 운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같은 나이인데도 어떤 사람은 잘 살고 어떤 사람은 지독히도 힘들게 사는 이유는 운명의 시작점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날 곧 사주를 운명과 연관하였을 때 운명의 계절도 자연의 사계절과 똑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운명의 봄에 태어난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운명의 계절을 맞습니다. 반면 태어난 사주 생일이 운명의 가을이면 가을, 겨울, 봄, 여름의 순서로 운명의 계절을 보겠지요.
같은 나이일지라도 운명의 생일이 다르면 반대의 계절을 보내게 됩니다. 40대에 어떤 사람은 여름일 때 다른 사람은 한겨울을 맞습니다.
계절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입니다.
동지에 이르러 태양 빛이 가장 적었다가 다시 태양은 높아집니다. 그리고 낮도 점점 길어집니다. 동지로부터 일 년의 1/4인 3개월이 지나면 춘분이 되어 드디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집니다. 춘분이 지나면 세상은 점점 빛이 늘어나고 밝아집니다.
동지 이후 태양이 비추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점점 땅도 따뜻해집니다. 비로소 언 땅이 녹아 지표열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그때가 춘분 무렵입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시기입니다. 춘분에 이르러 땅과 하늘은 거대한 순환, 교류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주역에서는 지천태(地天泰)라고 멋지게 일컬었습니다.
춘분에 이르면 희망에 가득 찰 것으로 보입니다만 인생의 춘분, 운명의 춘분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갈등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평온한 생활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불안하고 망설이며 힘들어합니다.
춘분에 지열의 상승으로 땅과 하늘의 기운이 마구 섞이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혼돈으로 접어듭니다. 개인의 운명도 이 무렵에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됩니다.
낮에는 눈에 무언가 보이는 듯하여 희망에 들떴다가 밤이 되어 다시 절망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낮과 밤의 시간이 비슷하여 힘겨루기를 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감정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고 불안과 갈등으로 힘들어합니다.
춘분에 이르면 운명의 힘이 개인을 세상으로 나가게 합니다. 정확하게는 이미 세상에 나왔지만 그동안 경험한 세상에서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 깨닫는 시기입니다.
비로소 객관적인 자기를 마주합니다. 처참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철저히 고독하고 가진 것 없이 초라하며 무력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차라리 집 안에서 게임만 하고 있으면 현실과 마주하지 않아서 마음은 편합니다. 불안함이 있다 하더라도 막연한 정도이지 눈에 드러나지 않고, 그래서 내 존재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춘분에 이르면 자기를 깨닫게 됩니다. 게임만 하다 할 줄 아는 것 아무것도 없이 덩그러니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자기를 봅니다.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냉정하게 인식합니다. 이런 자기를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사주를 해석할 때 인성(印星)이란 것이 있습니다. 오행의 순서에서 자기를 낳아주는 기운입니다. 오행은 목, 화, 토, 금, 수, 목의 순서로 순환하는데 각 오행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인성입니다.
인성은 자기를 낳아주는 존재이므로 엄마와 같습니다. 낳아주고 길러주는 기운입니다. 인성이 들어오는 때에는 뭔가 이루기보다 배우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명의 춘분 시기에 인성을 맞이하면 그 사람은 자기에 대해 배우고 스스로를 올바르게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너무나도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디 몸 둘 데를 찾지 못하는 자괴감을 느낍니다. 부끄러움이 춘분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합니다.
부끄러운 자기를 마주하기에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더 이상 거들먹거리는 것 없이 가식적인 껍데기를 벗어던집니다. 이제야 자기의 운명을 만들어갈 주체로서의 자기가 오롯이 생성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고통의 때에 이르러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시련의 시기에 이르러 이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한심한 자신을 마주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진정한 반성을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비로소 발전의 바탕이 됩니다. 드디어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부끄러운 발걸음을 뗍니다. 얼마나 힘들까요? 앞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자기에 대한 미혹은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이런 날들의 연속입니다. 타인과의 비교는 더욱 괴롭습니다.
꽤 큰돈을 주식에 넣어두었다가 결국 정리하고 초라한 현금만 남았을 때, 비로소 정리한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 수시로 찾아오는 절망과 회한, 그리고 그것을 뒤로하고 부끄럽지만 다시 먹고살아야 할 것을 찾아야 할 때, 그 고통의 시기가 삶의 춘분입니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할 것을 찾는 그 장면이 다시 거대한 드라마의 서막입니다.
구체적인 모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누구나 이런 시기를 맞습니다.
힘들다 싶으세요? 좀 더 참으십시오. 춘분이 지나면 낮이 길어지고 빛이 점점 더 늘어나고 곧 꽃이 피는 계절을 맞습니다.
지금 앙상한 나뭇가지를 만져보세요. 미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겨울의 퍼석함이 아니라 물이 올라 꽤 부드럽다는 것을 느낄 겁니다. 힘들지만 인식의 지평선 아래에서는 많이 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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