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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후기

by Mr. Goodman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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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를 관람한 후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공연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 목차 -

1. 공연 소개

2. 원작 :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3. 법정 공방 랩 배틀

4. 공연 외 재미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포스터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포스터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후기


1. 공연 소개

뮤지컬은 음악과 춤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그런데 그 음악이 멜로디가 있어 감정 전달이 수월한 노래가 아니라 랩이라면 어떨까?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뮤지컬인데 노래가 없는, 제목처럼 모순적인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대학로에 있는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소크라테스와 멜레토스 두 사람이 주인공이고 조연은 없이 앙상블 팀이 뒤를 받친다. 트리플 캐스팅인데 소크라테스 역은 양동근, 유성재, 정민이 맡고 멜레토스 역은 치타, 황민수, 아넌딜라이트가 맡았다.

창작 뮤지컬이어서 모든 것이 새롭다.

 

2. 원작 :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지만 제자인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변론을 써서 법정에서의 공방과 독배를 마시고 의연히 최후를 맞는 소크라테스를 그린다. 이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설파한 철학적 주제인 무지에의 자각과 참된 진리의 실천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무렇게나 말하며 자기가 옳다고 떠들어대는 세상에게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왜 그러냐고 설명해 달라고. 소크라테스의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자기가 틀렸거나 알지 못하는데 아는 체했다 또는 아는 것처럼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철학의 임무다. 참된 진리의 토대를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 이런 식으로 개인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은 감정적으로 모욕이 될 수 있다. 특히 옳다고 자신 있게 떠들어대던 힘 있는 자들에게 그 모욕은 더 크게 와닿는다. 지금껏 누리던 권위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사형을 받는다.

부당한 아테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옳다고 여긴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말로 의연하게 죽음마저 받아들인다.

 

3. 법정 공방 랩 배틀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책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기반으로 한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멜레토스와 소크라테스의 법정에서의 공방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그 공방을 두 명의 주인공이 랩 배틀로 표현한다.

 

내가 본 공연은 소크라테스 역이 양동근이었고, 래퍼 치타가 멜레토스 역을 맡았다. 양동근이야 연기자로서도 래퍼로서도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 긴 대사를 마치 물처럼 유연하게 리듬을 타면서 랩을 한다. 관객이 볼 수 있는 스크린에 랩의 대사가 나와 그 대사를 읽으며 내용을 따라가기 바쁘지만 몸은 그의 리듬에 녹아든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런 몸의 움직임은 그의 주장이 옳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옳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지한 아테네 시민처럼 나도 소크라테스에게 유죄를 던졌을 것 같다. 이유는 치타 때문이다. 그녀의 랩은 소크라테스의 죄를 드러내며 날카롭게 공격한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소크라테스의 유죄를 믿게 만든다. 오직 랩의 힘만으로 그렇게 한다.

다르다.

 

무대에는 기둥 모양의 스크린만 덩그러니 있는데 관객이 신전 안에 있는 착각이 든다. 조명과 앙상블이 두 주인공의 물과 불같은 법정 공방의 열기로부터 잠시 숨을 쉬게 한다.

 

배우와 관객이 랩을 주고받으며 리듬을 타다 보면 공감의 기쁨이 가득 차면서 속이 확 뚫린다. 공연이 끝난 후 겨울밤의 추위는 더 깊어져 피부를 에이지만 오히려 몸에서 열이 오른다.

 

4. 공연 외 재미

이 공연을 보러 간 날은 12 23일이었다. 아주 추운 날이었다. 공연 전 극장 옆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창문으로 한기가 들어왔다. 카페 건물 안에 있으면서 발이 시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경험을 했다. 창밖에 보이는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날이 너무 추운 것이다.

잔뜩 춥고 휑한 대학로를 보니 50년대, 60년대 영화에서 묘사되는 서울의 겨울이 떠오른다. 대학로라는 장소 때문에 생각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극장 안 1층 로비가 춥다. 매표소로 빨리 가려 계단을 내려갔는데 거기서 길을 잃었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 배경이 극장 안이다. 지박령이라 할 만큼 극장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조그마한 이 극장도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거대한 파리 오페라 극장이라면 개연성이 있겠다.

 

제 길을 찾아 돌아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양동근 배우를 만났다. 반가웠지만 보통 사람을 만난 것처럼 목례로 인사했다. 배우는 배우다. 멋있고 부드럽지만 카리스마가 있다.

이 작품을 아이가 보러 간다고 했다. 아내와 같이 간다고 한다. 나만 혼자 남아 있게 되어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들과 같이 가려 조르는 것처럼 나도 간다고 따라붙었다. 그래서 작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갔고, 양동근 배우가 주연인 것도 몰랐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렇게 준비 안 된 관객에게 래퍼 따라 어깨를 흔들게 했으니 미안하고 감사하다.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여기저기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주의의 혜택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 가장 크게 누린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허용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나만 옳다는 주장이 권력을 획득했을 때 자기의 주장과 다른 주장은 용납하지 않게 된다. 즉 관용이 관용이라는 시스템을 파괴한 것이다.

자유의 적에게 줄 자유는 없다라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독일 헌법은 채택했었다.

 

일상 생활에서는 호의가 반복되면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된다. 만약 구태여 할 필요가 없었던 호의를 그만두었을 때 비난을 받게 된다. 호의가 비난을 낳은 것이다. 이것도 패러독스의 하나다.

 

대부분의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제목을 붙였다. 이것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잘못한 것처럼 보인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그리고 요즘 나오는 책도 왜 제목을 바꾸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릴 때 이 책 제목만으로 편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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