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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가족 한방 주치의
독서노트

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by Mr. Goodman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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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 제가 하고픈 말을 먼저 씁니다.

슬램덩크를 아신다면 꼭 보세요.

 

- 목차 -

1. 과거와의 조우

2. 산왕을 넘어 삶의 역경을 넘어

3. 뒷 이야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포스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1. 과거와의 조우

경조사나 어떤 자리에서 오랫동안 못 만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반갑게 손을 마주 잡고 인사한 후 어쩌면 이렇게도 안 바뀌었냐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한다. 그리고 또 대답한다.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많이 변한 현실을 무시하고 그 시절의 자기와 그 시절의 사람과 그 시절의 시간과 공간을 만난다.

 

영화가 시작하면 작가의 손에서 송태섭이 그려지고, 곧 송태섭이 나타나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리고 정대만, 채치수, 서태웅, 강백호가 단순한 선에서 시작하여 내가 알던 인물이 되어 내게로 걸어온다.

그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예전 모습 그대로 더 생생한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아!”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때의 내가 되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곳으로 가 있다. 거기에는 그때의 내가 있다.

 

2. 산왕을 넘어 삶의 역경을 넘어

그 시절의 시간과 공간과 사람과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산왕과의 경기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잘 안다. 과거의 그 순간을 함께 했기에 그들 각자가 어떤 얘기를 하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며, 어떤 행동을 했는지조차 다 안다.

 

그런데도 그 익숙함이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새롭다.

너무도 익숙한 순간이 다시 내 앞에 펼쳐질 때 현재가 아닌 그 시간 속에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슬램덩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 이노우에는 익히 알고 있는 산왕과의 경기를 내 머릿속 기억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키듯 재현한다. 그리고 경기를 뛰는 익숙한 인물들의 얘기도 더한다. 작가는 그것을 조리 있게 다시 작가의 시각으로 편집하여 간략하게 전한다. 새롭다. 이로써 이 영화는 단순한 슬램덩크의 추억팔이를 넘어선다.

 

새로운 것은 이 영화의 포커스가 송태섭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농구를 좋아하나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작은 소년.

북산의 가드가 역사상 최고의 고등학교 팀인 산왕과의 경기에서 북산의 최전방에 나선다. 매치업은 이명헌이다. 키도 기량도 경험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를 상대로 자기 팀을 조율해야 한다.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불가능한 대결이다. 책임감과 부담감 더 깊은 곳에는 공포로 인해 속에 있던 것을 모두 게워낸다. 괜찮다고 넌 No.1 가드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송태섭에게 그 얘기를 할 수 없는 것은 그에게서 나를 보기 때문이다.

 

산왕과의 경기를 했던 북산을 목도한 나였지만 그 시간 이후 거의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안다.

넘을 수 없는 산왕이라는 존재, 후반전 시작된 후 올 코트 프레싱의 압박, 그 압박으로 인한 좌절, 게임을 조율하지 못하는 무력함, 선택의 불안과 선택의 실패, 그 선택이 남기는 또 다른 고난.

경기 전 토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던 송태섭이지만 사실 나를 보고 있었다. 넘버 원이라는 젊은 치기가 30년 동안 겪을 좌절, 두려움, 실패, 불안, 고난이 송태섭에 오버랩되었다..

두렵고 도망치고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애써 할 수 있다는 듯이 당당함을 가장하고 매일매일 삶을 살아가던 내가 보였다.

 

게임은 마지막에 다다르고 남은 시간은 1

작가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치열하던 경기를 함성이 아니라 정적으로 마무리한다. 극도로 제한된 시선은 공에만 집중되고 그 공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해 정지 화면처럼 움직임의 여운만 남긴 채 화면은 이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천재 강백호는 서태웅의 도움을 받아 역사를 쓴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할 수도 있는 순간이 점화한다.

고요하다.

 

뚜벅뚜벅 그들이 걸어온다.

그리고 주먹을 내민다. 그 주먹을 맞받아 주먹 악수를 나눈다. 순간 현실로 돌아오며 강력한 락 사운드와 함께 환희가 밀려온다.

심장이 뛴다.

 

좌절을 겪었고, 앞으로도 좌절은 있을 것이고, 두려움은 언제나 마음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실패를 겪었지만 같은 모양은 아닐지라도 아니 똑같은 모양의 실패를 또다시 겪을 것이고 그로 인해 불안하며 삶은 고난으로 점철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러한 것이 심장을 뛰게 한다.

 

흥건한 손을 펴며 내 손에도 그때 그렇다고 믿었던 No.1이라는 글자가 희미하지만 남아 있음을 본다. 이제 수시로 손을 볼 것이고 다시 그때를 떠올릴 것이고, 살아갈 것이다. 심장이 뛴다.

 

3. 뒷 이야기

제목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다.

더 세컨드 슬램덩크가 나올까? 안 나올 것 같다. 내가 추리한 작가의 성향 때문이다. 안 나오면 작가의 마음을 맞혀서 즐겁고, 만약 나온다면 그것으로 즐겁다.

 

슬램덩크는 완전판을 갖고 있었다. 최소 1년에 한 번은 읽었다. 아무 권이나 뽑아서 읽으면 무조건 다음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는 마법의 책이었다. 너무 낡아서 정리했고 몇 년째 슬램덩크를 잊고 살았다.

다시 책을 사려니 가격이 부담된다. 나 같이 가격을 알아보고 비싸서 망설이는 사람이 많나 보다. 어떤 아재는 조카에게 준 책을 도로 갖고 왔다고 한다.

이해한다.

 

아내가 북산의 다섯 명 중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냐고 묻는다. 그것은 모르겠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불꽃 남자,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이라고 했다. 어디서 조사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대만이 압도적이라 한다.

 

2023년 시작하면서 벌써 2023년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을 봐버린 것 같다. 중년을 넘어가는 아저씨는 타임머신을 몇 차례 더 탈지 모르겠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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